공보의 익명 인터뷰 시리즈① 섬보의
응급 대비 야간 근무, 토요일도 평일처럼
"1년에 한번 갈아 끼우는 기계부품 같다"

공중보건의사는 40년간 공공의료 한 축이자 최전선에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근무 환경에 대한 문제도 40년간 이어졌다. 그러나 공무원이라는 신분과 특수한 근무 여건으로 신상을 드러내기 쉽지 않다. 청년의사는 공보의 근무 환경을 진단하기 위해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와 함께 익명 인터뷰를 기획했다. 공보의 4명이 응했다. 섬 지역에 근무하는 이른바 '섬보의'와 민간병원에 근무하는 '병공의', 지역 의료원에 있는 공보의들이다. 인터뷰는 유선으로 진행했다. 당사자 허락을 받아 신상과 관련된 내용은 각색했다.

'섬보의'인 공중보건의사 A씨는 지난 24일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일부 지자체가 공보의 야간·휴일 근무 기준 개정을 추진하는 것을 두고 이미 섬보의는 주168시간 상시 진료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섬보의'인 공중보건의사 A씨는 지난 24일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일부 지자체가 공보의 야간·휴일 근무 기준 개정을 추진하는 것을 두고 이미 섬보의는 주168시간 상시 진료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정규 근무.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응급 상황 대비 야간 근무. 휴일 24시간 섬 내 대기.

공중보건의사 1년차 A씨는 '주168시간 근무'를 하고 있다. 동료 공보의 B씨와 격주로 교대한다. 근무지는 육지와 다리로 이어지지 않은 섬(비연륙도)이다. 일주일 근무를 마친 동료가 하루 1번 들어오는 배를 타고 육지로 나가면 A씨는 섬에 남은 유일한 의사다.

지침상 공보의는 야간과 휴일은 응급 환자 진료만 한다. 하지만 A씨는 토요일 오전도 평일처럼 근무했다. 금요일 오후 6시부터 토요일 아침 9시까지 야간 근무를 마치면 곧바로 보건지소 문을 열고 토요일 진료를 시작했다. 남들도 다 이렇게 하는 줄 알았다. 처음 섬에 들어온 A씨를 맞이한 보건지소 직원도, A씨 전화를 받은 보건소 담당자도 그렇게 알려줬다. 섬 안에 있는 유일한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섬보의'라면 이렇게 일한다고 했다.

"원래 그런 줄 알았어요. 담당 보건소에 물어봐도 그렇다고 하니까요. 다른 지역에서 근무하는 공보의들 만나고서 알았습니다. 토요일 오전 근무는 원래 안 하는 거라고."

큰 변화는 없었다. 진료실 위층 관사에서 응급 콜을 기다려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퇴근 후 보건지소 밖을 잘 돌아다니지도 못했다. '의사가 환자 안 본다'는 민원이 들어온다는 말을 들었다. 요즘도 A씨는 편하게 못 눕는다. 잠들었다가 호출을 놓칠까 걱정돼서다. 제때 진료 못 해도 큰일이지만 '의사가 전화를 안 받는다'는 민원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A씨는 "내가 의사인지 민원대 공무원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 일부 지자체가 "주민 민원으로" 공보의 야간·휴일 진료 지침 수정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연실색했다. 야간·휴일에 진료 보조 직원을 둔다는 내용이 아니었다. 보건소의 진료 지원을 강화하거나 육지와 연결 수단을 보강한다는 내용도 아니었고 168시간 근무 체제를 개선하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지자체들은 현재 야간·휴일 근무 기준인 '응급 환자'라는 제한을 삭제하자고 보건복지부에 요청하고 있었다(관련 기사: [단독] 공보의는 노예처럼 일하라?…야간·주말 '응급' 삭제에 '발칵').

주168시간 '정상 진료'로 민원 해소?…"공보의 사람으로 안봐"

대공협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의과 공보의 1,718명 가운데 비연륙도 지역에서 근무하는 섬보의는 5.4%인 93명이다. 보통 전체 복무 기간 3년 중 1년을 섬에서 보내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섬 지역 복무하는 동안 월평균 초과근무시간은 214.8시간이나 된다. 지자체 요구로 근무지 내 상시 의료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응급 환자 진료를 위해서다.

그러나 야간·휴일 진료에서 실제 응급 환자 비중은 높지 않다. 그만큼 "다음날 정규 진료 시간에 와도 충분한"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A씨의 경우 평일 야간 근무는 하루 3~4통, 휴일은 5~6통의 호출을 받는다. 진짜 응급 환자는 많아야 하루에 1명 정도다. 하지만 어떤 환자는 직접 보기 전에는 응급 질환 여부를 가려내기 어렵다. 체한 것 같다는 자정 무렵 전화에도, 새벽 2시 취객의 고함에도 진료실로 뛰어 내려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막상 받은 환자가 응급 질환이 아니어도 진료를 거부하기 쉽지 않다.

보건소로 대표되는 지자체는 공보의에게 응급 상황을 홀로 감당하고 "민원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능숙하게" 대처하길 요구한다. 일반 환자의 야간·휴일 진료도 여기 포함된다. 공보의 신분으로 이 암묵적이고 지속적인 압박을 버텨내기 어렵다. A씨의 전임자도, A씨도 처음에는 "다들 그런 줄 알고" 시작해 나중에는 "민원 해결 차원에서" 야간이나 휴일에도 일반 환자를 받게 됐다. 주민들도 예전부터 언제든 진료를 봐줬으니까 한밤중이나 새벽이나 '섬 유일한 의사'인 공보의를 찾아온다.

"응급 환자가 아니라 진료가 어렵다고 했더니 민원이 들어왔어요. 이런 민원이 들어오면 보건소는 알아서 해결하라고 저희한테 넘겨버립니다. 공보의가 민원인에게 직접 전화해 그 화를 하나하나 다 들어주는 게 민원 처리에요. 이런 민원이 많으니까 보건소 입장에서는 아예 공보의 운영지침 자체를 바꿔서 문제를 없애겠다는 생각인 거죠."

그간 보건소 압박과 민원 속에 A씨는 사실상 주168시간 정상 진료를 해왔다. 지자체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를 명문화하고자 하는 셈이다. A씨는 "내가 의사인지 민원대인지"가 아니라 "내가 사람으로 보이기는 하는지"부터 묻게 됐다. 공보의 제도 취지대로 의료취약지 인프라를 잇는 의사가 되고 싶지 1년에 한 번 "필요에 따라 갈아 끼우는 기계 부품" 취급받고 싶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뭘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게 가장 힘들어요. 잠 못 자는 거 괜찮습니다. 응급 환자 진료 안 힘들어요. 배 태워 보낸 환자가 고비 넘겼을 때나 어르신들이 진료실 찾아와서 고맙다고 하시면 오히려 기쁘고 뿌듯합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을 넘어서 다른 일에 쫓기는 제 모습을 볼 때면 너무 괴로워요."

반복되는 '섬보의' 문제 해결은…"1년짜리 외지인" 인식 전환부터

비정상적인 근무 형태를 강요받는 섬보의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개선 시도는 있었지만 해결은 쉽지 않았다. 그 원인 중 하나로 A씨는 정보 부재를 꼽았다.

도서 지역은 대부분 1년차 공보의가 근무한다. 자연스럽게 근무지 담당 공무원이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하게 된다. 외부와 격리된 공간에서 공무원 지시가 지침보다 우선되는 게 자연스럽다. A씨가 토요일 근무와 야간·휴일 일반 진료를 처음 시작한 것도 공무원 말을 듣고 "원래 이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고 알아서다.

A씨는 공보의 정보 부재를 해소하는 동시에 주민에게 공보의가 담당하는 업무 영역과 역할을 정확히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단순히 "1년짜리 외지인 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1년간 지역 공공의료 한 축의 담당자"로서 공보의를 인식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지자체 차원에서 주민에게 안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공무원이 담당하는 영역과 업무가 있고 매뉴얼에 따라 수행하는 것처럼 공보의도 정해진 지침과 규정에 따라 업무를 본다는 것이 더 알려져야 해요. 지금처럼 모든 민원을 처리해주는 '불만접수 서비스센터'처럼 여기는 인식은 꼭 전환돼야 합니다."

정부 차원에서 응급의료 인프라를 보강하고 응급 질환 발생 위험을 낮추는 노력도 이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서 지역은 고령층 인구가 많고 만성질환자 비율도 높지만 정기 진단이 가능한 의료기관은 보건지소 한 곳뿐인 경우가 많다. 고령층 환자 입장에서 하루 1~2번인 배편으로 육지 의료기관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기 부담스럽다. 관리가 제대로 안 되니 응급 상황으로 번질 위험은 그만큼 커진다.

"도서 지역 주민은 응급으로 가지 않을 환자도 응급 상황에 처하기 더 쉬워요. 의료취약지가 빠져 있는 악순환 중 하나입니다. 각 섬에 흩어져 있는 공보의에게만 의존하지 말고 정부 차원에서 도서 지역 응급의료 인프라 보강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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