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환자 대기실에 들어서려는데 뭔가 어수선한 기운이다. 타임아웃(환자 신원, 수술명, 수술 부위 등의 확인)을 하라고 나를 불렀던 간호사가 찡그린 얼굴로 입구에서 슬며시 내 옷깃을 잡는다.“교수님, 환자가 대성통곡하고 있어요.”정말 그랬다. 갑상선암 수술을 앞둔 내 환자는 대기실에서 명패를 찾지 않아도 알아볼 만큼 크게 울고 있었다.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바라보고 있는데, 옆자리 할머니 환자와 맞은편 중학생 환자도 이내 얼굴이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훌쩍이기 시작한다.‘아, 곤란하다.'마취과 전공의와 젊은 외
호스피스병원은 치유가능성이 없고 증상이나 기능적 장애로 가정에서 돌볼 수 없는 말기암 환자들을 임종 시까지 치료해 주고 고통을 완화해 줌으로써 남아있는 시간을 보다 의미 있게 보내다 편안하게 임종할 수 있도록 돌봄을 제공하는 곳이다. 이런 도움은 비단 환자에만 국한되지 않고 어려움을 함께 견디며 감당하고 있는 가족들에게도 같은 맥락에서 유사하게 주어진다. 질병의 치유를 통한 건강의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병원과는 달리 호스피스병원의 환자와 보호자들의 대부분은 오랫동안 많은 검사와 힘든 치료과정을 거쳐 오면서 이미 많이 지쳐 있던
때론 의사라는 직업이 어떤 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쩌면 전생에 우린 드라마 도깨비에 나오는 김신 마냥 칼에 수많은 피를 묻힌 장수가 아니었을까.태생이 감정적인 인간이라, 환자의 죽음을 맞이할 때 나는 너무나도 괴롭다. 벌써 15년은 된 일이지만, 인턴 때 첫 코드 블루가 떠서 달려가던 기억이 난다. 그 뛰어갈 때 처음에는 마치 드라마에 나오는 의사가 된 것 같은 마음에 신이 나서 달려간다. 그게 정말 신이 난다기보다는 우리가 언제 또 이렇게 전속력으로 병원 내를 뛰어가겠나. 그러나 그렇게 CPR을 할 때면 그때의
우리는 흔히 중요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한마디의 말은 천금과도 같다" 라는 표현을 한다. 이러한 천금과 같은 말은 어느 때 가장 적합한 말일까? 물론 사람마다 각자의 위치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생과 사의 기로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주치의의 한마디가 그렇지 않을까 싶다. 요즈음은 전공의 특별법으로 전공의 생활에도 약간의 여유가 생겼지만. 14년 전 전공의 1년 차의 생활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꽤나 힘든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만큼, 환자나 보호자를 대할 때에도 온화한 말투로 대하기란 쉽지만은 않았으리라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남자는 기묘하기 짝이 없었다. 서른이 넘은 나이가 무색하게도 남자의 키는 130센티미터가 겨우 될까 말까였다. 실은 키를 제대로 잴 수 있을지부터가 의문이었다. 남자의 왼쪽 다리는 무릎 아래에서 끊어져 있었고, 남아 있는 오른쪽 다리는 뒤틀려 있었으며, 그 아래에 달린 오른발은 크기가 너무 작아 30킬로그램이 채 안 되는 남자의 몸무게조차 지탱할 수 없어 보였다. 누가 봐도 성인 남자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몸이었다. 하지만 내가 남자에게서 느꼈던 강한 이질감과 위화감의 근원은 남자의 끊어진 왼다리도, 뒤
이게 몇 년 만인가?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된 이후 처음으로 온 가족이 모인 추석날이었다. 그새 아이들은 하나 빼고 다 초등학생 고학년이 되어 자기네끼리 테이블을 차지하고 어른들만 따로 모여 앉았다.서로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보따리를 풀다 아버지가 지갑을 주섬주섬 만지시더니 ‘사전연명의료의향서등록증’을 꺼내시는 게 아닌가.“나랑 너네 엄마는 보건소 가서 이거 다 작성해 놨으니까, 혹시 나중에 잘못되면 절대 아무것도 하지 마라.”70세도 안되신 부모님이 예고 없이 말씀하시니 당황스러웠지만, 자식들이 병시중 고생할까 결정하신 것 같아
“환자분 시술 시작하겠습니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마취할 때 조금 아프세요. 아픈 순간에는 제가 미리 말씀드릴게요.”케모포트 삽입을 위해 환자 오른쪽 가슴 윗부분을 마취했다. 시간 간격을 두고 마취가 되길 기다리던 중 환자가 갑자기 노래를 불렀다.“아름다운 이 강산을 지키는 우리 사나이 기백으로 오늘을 산다. 포탄의 불바다를 무릅쓰면서 고향 땅 부모형제 평화를 위해.”순간 눈이 동그래진 시술 방 간호사랑 눈이 마주쳤다. 공중보건의사로 군 복무를 마친 나는 훈련소를 4주 밖에 다녀오지 않았지만, 저 노래가 군가라는 것 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