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아산병원에서 뇌출혈이 발생한 간호사가 서울대병원으로 전원된 후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의사인 나도 이해할 수 없는데, 국민들은 어떨까 생각했다. 며칠 뒤 분당서울대학교 신경외과 방재승 교수의 글이 올라왔다. 우리나라 빅5병원의 뇌혈관외과 교수는 기껏해야 2~3명이 전부이고, 가장 규모가 크다는 서울아산병원에도 단 2명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중증의료 제도 지원책 마련 필요성에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그런데 중증의료는 병원에서도 미운 오리다. 이국종 교수도 중증의료 치료에 매진하다 적자로 병원 눈 밖에 났다
그렇다고 병원에 찾아간다고 바로 입원할 수는 없었다. 입원표가 있어야 했다. 입원표는 병원의 원장이나 후원자로부터 얻었다. 막상 입원표를 들고 병원에 가도 모두 입원하진 못했다. 네 명 당 한 명 정도만 입원했다. 그만큼 병상이 모자랐고, 그러다 보니 환경은 열악했다. 병동의 상황은 한마디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환경이었다. 몸져누운 환자들로부터 나오는 토사물과 대소변, 그리고 악취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이 나쁜 공기를 마시고 있으면 없던 병이 생길 것이라는 믿음(미아즈마 이론)도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환자들
지난 2007년 1월 365의원에서 야간 진료를 봤다. 새벽 6시경 경찰이 찾아왔다. 내가 진료를 봤던 10살 A군이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사망했다고 했다. 며칠 뒤 몽둥이를 든 사람이 병원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같은 날 저녁 지역 공중파에서 이 사건을 보도했다. 차트를 열어보고 내가 놓친 부분이 무엇인지 복기했다. A군은 상복부 불편감과 복통으로 내원했다. 갑자기 사망할 이유가 없었다.부검 결과 A군은 관상동맥 경로 이상, 심장마비로 숨졌다. 무혐의를 받은 형사 재판과 별도로 배상금 6억원의 민사 소송이 남았다. 과실을 밝히려는
리스터가 학생이던 시절, 런던에서 의대생이란 말은 막돼먹은 젊은이라는 뜻과 같이 쓰였다. 떼로 몰려다니며 술 먹고 방탕하게 노는 자들이 바로 의대생의 이미지였다. (물론 지금은 아니겠지?) 의대생들은 병원 근처의 싸구려 여인숙을 전전하며(병원 근처에 살았을 테니), 해부실에서 배인 악취를 없앤다며 시가를 물고 다녔다. 때로는 인체 해부라는 특권 아닌 특권을 이용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망나니짓을 벌여 만인에게 지탄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가 사고가 터지기도 한다. 1700년대 중반 에든버러에서는 의대 교수의 지시를 받은 제자들이
먼저, 보기에도 억세 보이는 두 사람이 다가와 환자의 어깨를 누른다. 동시에 팔과 다리를 부여잡아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히 결박한다. 남은 한 사람은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리스턴이다. 그는 키가 190cm나 되는 거구로 카트에서 칼을 집어 들면서 청중에게 스코틀랜드 억양으로 외친다. "신사 여러분, 시간을 재세요(Time Me, Gentlemen)!"리스턴은 지혈대로 꽁꽁 묶은 병든 다리를 잡고 무릎 아래서 칼질을 시작한다. 칼을 놓았다 다시 잡는 몇 초도 아끼려고 칼을 쓰지 않을 때는 마치 북아메리카의 원주민처럼 피 묻은 칼을 입
UCL에 입학하기 위해 집을 떠나 런던으로 간 리스터는 학교 근처에 방을 얻어 8세 많은 에드워드 팔머라는 사람과 함께 살았다. 팔머 역시 퀘이커교도였고 서젼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로버트 리스턴(Robert Liston; 1794~1847)의 조수였다. 로버트 리스턴,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에든버러 의대를 나왔고, 19세기 초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서젼이 된 인물이다. 리스턴의 명성은 엄청나게 짧은 수술시간에서 얻었다. 그것이 무슨 특기가 되느냐고 되묻겠지만 아직 수술 마취를 하지 않던 시절에는 서젼의 빠른 손놀림은 환자들에게 엄
“과학 방역이 아니라 ‘침대 방역’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유행으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의료 현장에서 나온 말이다. 윤석열 정부가 강조해 온 ‘과학 방역’을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말에 빗대어 그 실체가 없다고 비판한 것이다.오미크론 변이 확산세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 때부터 전문가들은 재유행을 예고했다. 그리고 재유행이 시작됐다. 두 달 가량 대응체계를 정비할 시간적 여유도 있었다. 하지만 재유행이 시작된 지금, 현장은 더 혼란스럽다. 무장 해제된 상태에서 다시 코로나19 환자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한국의 노령화지수가 152.0을 기록했다. 이는 14세 이하 유소년 100명 당 부양해야 하는 65세 이상 인구가 152명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더 자세히 들여다볼 부분은 노인 인구의 건강 상태다. 건강한 노인 인구와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노인 인구에 대한 부양 부담은 천양지차다. 대표적인 노인 질환 ‘골다공증’을 진료하는 의료인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우리 사회가 당면한 제1 과제는 바로 노인 ‘부양 부담’의 쓰나미를 야기할 수 있는 골다공증 골절을 막아내는 것이다.골다공증은 고령 인구에서 주로 발생하는 대표적인 연령 관련
지난 2020년 1월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인류는 백신과 치료제로 반격을 준비했다. 변이를 거듭하며 나타난 오미크론은 인후두부 감염으로 전염력은 강하지만 치명률은 낮았다. 이에 정부는 정면 돌파로 코로나19 대응책을 변경했다. 코로나19가 자취를 감출 것으로 예상하며 거리 두기 완화와 실외 마스크 착용도 해제했다. 짧지만 그리운 일상으로 돌아가 사람들을 만나 먹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자영업자도 오랜 불황을 마감하는 듯 기지개를 켰다.아뿔싸. 코로나19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무더위가 시작
죠셉 리스터는 1827년 런던 동쪽의 웨스트햄( Upton House, West Ham, Essex)에서 조셉 잭슨 리스터(Joseph Jackson Lister; 1786~1869)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리스터는 대를 이어 와인을 사고파는 일을 했고 집은 부유했다. 하지만 여느 부자집들과 달리 집안 분위기는 검소하고 엄격했다. 독실한 퀘이커(Quaker; 종교친우회) 교도였기 때문이다. 다른 가족들은 여가 시간에 운동이나 연극 구경을 오락거리로 삼았다면 이 엄격한 퀘이커교도 집안의 가장은 공부나 과학 연구에서 즐거움을 찾았다
급성림프모구백혈병은 매우 공격적인 진행 양상을 보이며, 재발 역시 잦은 특성을 갖고 있다. 이로 인해 성인 환자의 5년 생존율이 35.5%에 불과할 정도로 예후가 좋지 않다.급성림프모구백혈병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중요한 열쇠는 재발의 강력한 예측 인자인 미세잔존질환(Minimal Residual Disease, MRD)을 치료하는 것이다. 미세잔존질환은 환자의 재발 및 사망 위험과 밀접하게 연관된 만큼, NCCN (National Comprehensive Cancer Network) 가이드라인에서도 완전관해 도달 후 미세잔존
지난 7일 오후 회진 준비를 하던 중 메시지를 받았다. ‘흉부외과의사 연봉이 의사 중 최고, 평균 4억7,000만원’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기사의 첫머리부터 이해 안되는 문구였다. 장난하나? 흉부외과 의사가 번아웃 직전이고 기피과인데다 박봉에 시달리는 것을 세상이 다 아는데?기사를 찬찬히 보았다. 보건복지부 보도자료를 기반으로 만든 기사였다. 흉부외과 의사가 전체 의사 중에 가장 많은 돈을 벌고 그 금액이 4억7,000만원이라고 기사는 아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었다.오후 회진을 하며 같이 일하는 동료 교수에게 “고등학교 때 성적이
초고령사회가 이제 3년 앞으로 다가왔다. 국내 노인인구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75세 이상의 후기고령 노인이 빠르게 증가해 2040년에는 전체 노인 인구의 절반 이상이 75세를 넘기게 된다.노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질병의 개수가 증가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많은 노인이 건강 문제와 함께 돌봄이 필요하다. 이미 노인 대부분이 고혈압, 당뇨병 등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11%가 보청기가 필요하고 혼자서 일상생활을 다 해내기 어려운 노인도 12%에 달한다. 일상생활의 어려움은 의료기관 이용 어려움으로 이어진다.노인 중 연
1867년에 에든버러의 외과-산과의사인 제임스 심슨(Sir James Young Simpson, 1st Baronet; 1811~1870)은 영국내의 병원에 입원하여 ‘팔다리 절단 수술’을 받은 환자 2,000여명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300 병상 이상의 대형병원을 들여다보니 환자들의 사망률은 41%였고 주된 원인은 바로 감염이었다.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병원 밖에서 절단 수술을 받은 경우에는 사망률이 11%정도 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200명의 조사 결과)! 병원 박에서 수술을 받으면 사망률이 4
모든 수술이 죽음으로 가는 길은 아니었다. 어떤 환자들은 감염 없이 회복하기도 했다. 하지만 행운의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요행에 가까웠다. 요행만 믿고 수술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수술은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었다.일부 환자의 수술 자리에서는 ‘크림’ 같은 노란 고름이 생기기도 했다. 이 역시 좋은 징조였다. 고름은 있어도 환자가 나빠지지 않았다. 비교적 잘 나았다. 의사들은 이 고름을 ‘좋은 고름’이라 불러 반겼다.세균, 세균을 공격한 백혈구, 혈액, 단백질 성분 등으로 이루어진 것이 고름인데, 의사들은 왜 이 고름을 반겼을까
나는 요오드팅크라는 이름을 초등학교 시간에 처음 들어보았다. 가축이 새끼를 낳으면 탯줄을 자르고 그 자리에 발라주는 소독약으로 기억한다. 이름이 특이해 기억에 오래 남은 것 같다. 하지만 가축이 새끼를 낳는 일은 본 적이 없어 요오드팅크를 볼 기회는 없었다(아쉽게도 지금까지 요오드팅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때 ‘빨간약’과 요오드팅크가 어떻게 다른지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다. 요오드 팅크는 1839년에 처음으로 소독제로 쓴 것으로 기록에 남아있다. 특히 미국의 남북 전쟁 때 부상병들의 상처 소독에 널리 썼다.
‘고름 짜기’는 양쪽 엄지손가락으로 종기를 눌러 속에 들어있는 고름을 밖으로 빼내는 방법이다.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정말 아프다.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관건은 딱 한 번의 힘으로 모든 고름이 분출되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 고통도 덜하다. 아주 어릴 때는 아프다고 발버둥을 치고 목이 쉬도록 울어 댔지만 좀 크고 나서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한번은 종아리 아주 깊은 곳에 종기가 났는데, 나는 베개를 잡고 이를 악물었고, 어머니도 이를 악물고 온 힘을 다해 고름을 뺀 적도 있었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악성 종기의 마지막 기억이
리스터는 누굴까? 한마디로 말하면 외과 의사들의 수술에 ‘소독법’을 도입한 사람이다. 의사들의 손을, 수술 기구, 수술 부위를 소독한 후 수술을 하도록 만든 장본인이다. 지금은 그 일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150년 전만 해도 소독을 하고 수술하는 의사는 없었다. 때문에 의사들이 칼을 댄 자리에는 감염이 생기고 환자는 패혈증으로 죽는 일이 허다했다. 아무리 외과의사가 정성을 다해 수술을 했다 해도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수술은 ‘러시안 룰렛’ 게임 같은, 매우 위험한 도박이었다. 이런 위험한 외과 수술을, 지금처럼 안전한 수술로
전세계를 고통에 빠뜨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은 역설적이게도 많은 변화와 혁신을 불러왔다. 특히 바이오헬스산업은 펜데믹 이후 2020년 기준 전년대비 54% 수출 증가를 기록하는 등 큰 폭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일상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강세를 보였던 코로나19 진단검사 관련 품목 등 관련 분야에서 기존과 같은 성장세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또 산업 전반에 걸쳐 다소의 조정 과정이 있을 것이라는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선 바이오헬스가 저성장 추세
지난 2008년 국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뉴스가 있다. 해외여행을 간 자녀가 부모를 외국 공항에 버리고 귀국한 사건이다. 이는 21세기 ‘신(新) 고려장’으로 많은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당시 문제의 원인이 ‘고령화’임을 파악한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을 세웠다.장기요양보험제도를 마련해 고령자 돌봄 기능의 요양원 모델을 만들었고, 요양보호사제도를 도입해 간병 모델을 만들었다. 현재까지도 요양원의 간병기능은 국가가 부담하고 있다. 장기요양 등급을 받은 경우, 월 60만~70만원으로 부모를 모실 수 있다.같은 시기 정부는 요양병원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