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윤리학회, 학술대회 통해 ‘존엄한 죽음’ 공론화
정유석 회장 “의사도 준비 안된 조력존엄사…사회 논의 必”
늘어나는 ‘의료 윤리’ 문제…“임상 의사들도 고민 함께해야”

과학 기술 발달로 인간 수명은 늘수록 ‘존엄한 죽음’에 대한 의료윤리적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는 ‘소극적 존엄사’를 넘어 최근에는 의사의 도움을 받아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 있게 하는 ‘조력존엄사법안’이 발의되면서 ‘존엄한 죽음과 자기결정권’이 의료윤리 문제의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삶과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하는 인간 욕구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지만 ‘존엄한 죽음’에 대한 정의조차 불분명한 상황에서 ‘적극적인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의료윤리학회가 오는 25일 개최하는 추계합동학술대회 주제를 ‘존엄한 죽음과 자기결정권’으로 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 개정을 논의하기 이전에 존엄한 죽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료윤리학회 정유석 회장은 22일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조력존엄사법'과 존엄한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청년의사).
한국의료윤리학회 정유석 회장은 22일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조력존엄사법'과 존엄한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청년의사).

의료윤리학회 정유석 회장(단국대병원 가정의학과)은 22일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조력존엄사법 발의로 금기시됐던 죽음의 자기결정권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면서도 “사회적 공론화 없이 돌이키기 힘든 단계인 법을 논하는 것은 순서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조력존엄사를 법으로 허용하고 있는 네덜란드나 스위스 등 해외 국가들에서도 법제화되기까지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쳤고 논의가 무르익었을 때 의사들이 마지못해 논의에 응하는 분위기가 컸다는 게 정 회장의 설명이다.

정 회장은 “법 이전에 공론화를 통해 사회적 논의가 선행돼야 하고 예상되는 부작용을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 것인지 선제적인 고민이 우선돼야 한다”며 “그런 의미에서는 조력존업사법 발의가 의미있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정 회장은 “의학적 판단만으로 죽음을 결정할 수는 없다. 죽음의 문제는 그야말로 문화, 사회, 인구학적으로 여러 논의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연명의료 중단 결정도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의사들에게 버거운 짐을 지우는 일”이라고 했다.

사회적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해당 법안이 시행될 경우 사회적인 부작용이 더 클 수밖에 없다고도 우려했다.

정 회장은 “‘조력존엄사’라고 하지만 실은 ‘의사 조력 자살’이 맞다.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의사 조력 자살이 합법화된 이후 일반 자살률도 함께 증가했다는 보고가 있다”며 “자살에 대한 문턱이 낮아진다는 위험성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빈부격차가 큰 우리나라는 경제적 어려움이 정신적 고통의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다”며 “이 법이 시행된다면 사회적 약자들이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고자 자살을 선택하게 될 확률도 높아질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최근 들어 의료 윤리와 맞닿아 있는 의제들이 점점 늘고 있다. 정 회장은 의료윤리학회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 의사들도 의료 윤리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윤리학회는 대한의학회 용역사업으로 의학회 산하 학회가 윤리위원회를 운영할 수 있는 표준운영지침을 개발하고 있다.

정 회장은 “학회들이 기존에 운영하던 윤리위원회는 징계위원회 성격이 강했다면 각 학회마다 윤리외원회가 잘 만들어지고 표준운영지침대로 운영이 된다면 정기적인 네트워킹이 구성되고 의료 윤리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의사들이 명확하게 윤리적으로 지켜야 할 부분이 있지만 제도나 시스템 때문에 지키지 못하게 되는 것들 때문에 의사들이 비윤리적, 비도덕적인 과잉진료를 하는 것처럼 매도되는 부분도 있다. 그런 상황들이 안타깝다”고도 했다.

정 회장은 “신뢰받는 의사가 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한 노력들이 학회를 통해 많이 이뤄졌으면 좋겠다”며 “그러려면 윤리위원회 네트워킹에 임상 의사들이 적극 참여해 논의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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