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자율배식 급여 환수 두고 법정 싸움
의사 처방 어긋난다면서 기준 제시 못한 복지부
법원 "급여 기준 미달이나 초과했다고 보기 어렵다"

(사진: 청년의사DB)
(사진: 청년의사DB)

암환자들에게 과일과 채소를 자율배식(뷔페식)으로 추가 제공했다는 이유로 12억원대 소송에 휘말린 요양병원이 있다. 환자에게 ‘뚜껑’ 없이 음식을 제공한 게 의료법 위반이라는 지적부터 자율배식 자체가 요양급여 기준에 맞지 않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같은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환자들에게 제공한 ‘밥값’에 과징금까지 물어야 했던 요양병원은 기사회생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10월 13일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A요양병원에 내린 과징금 징수와 요양급여 환수 처분을 모두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자율배식을 제공한 요양병원이 의료법 시행규칙을 위반했다며 식대를 환수해 논란이 된 사건이다. 공단은 요양급여 3억3,662만3,810원을 환수 처분했고 복지부는 두 차례에 걸쳐 과징금 총 8억7,323만1,790원을 부과했다. 12억원이 넘는 금액에 요양병원은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약 1년만에 판정승을 거뒀다.

A요양병원 변호를 맡은 김주성 변호사는 지난 10월 28일 기자들과 만나 이번 판결 내용과 의미를 되짚으며 "법원과 복지부조차 선례를 찾지 못한 독특한 사건이다. 관련 사례로는 최초 판결로 본다"면서 "의료법과 건강보험법 목적이 다르고 환수 조치에는 합당한 사유와 정확한 환수 규모를 제시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고 했다.

법무법인 반우 김주성 변호사는 지난 28일 기자들과 만나 요양병원 식대 환수 처분 취소 판결 전말을 설명했다.
법무법인 반우 김주성 변호사는 지난 28일 기자들과 만나 요양병원 식대 환수 처분 취소 판결 전말을 설명했다.

'밥뚜껑'에서 시작된 12억원 처분 사건…법리 변경에 논점 전환

12억원 넘는 돈이 걸린 이 사건은 '밥뚜껑'에서 처음 시작했다. 의료기관은 환자 음식을 뚜껑이 있는 식기나 밀폐된 배식차로 제공해야 한다. 의료법 시행규칙 제39조는 위생상 이유로 뚜껑 배식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요양병원들은 "항암치료로 식욕이 떨어져 식사에 어려움을 겪는 암환자들이 입맛에 맞춰 다양한 음식을 섭취할 수 있도록" 뷔페식을 제공한다고 홍보하고 있었다. A요양병원도 일반식을 먹는 환자들에게 기본적으로 뚜껑 있는 식기에 식사를 제공했지만 과일이나 채소는 환자들이 추가로 더 가져다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일반 배식에 자율배식을 더한 일종의 혼합형이었던 셈이다. 이렇게 자율배식을 도입한 병원들이 게재한 홍보물을 보면 "밥이 맛있어서 식사량이 늘었다"는 환자들의 추천사가 단골멘트처럼 등장한다.

반면 이를 지켜보던 실손의료보험사의 생각은 달랐다. 자율배식이 요양병원 장기입원을 조장하고 그만큼 보험 손실도 늘어난다고 봤다. 보험사들은 자율배식이 '밥뚜껑'이 없어서 의료법에 위반된다며 보건소에 민원을 넣기 시작했다. 당시 A요양병원과 경쟁 관계였던 B요양병원도 민원 행렬에 동참했다. A요양병원이 의료법 위반으로 식대 환수 처분을 받으면 업무 정지까지 갈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9월 현지조사를 나온 복지부는 A요양병원이 일반식과 치료식을 자율배식으로 제공해 식대를 부당하게 청구해 "의료법 제36조와 의료법 시행규칙 제39조, 국민건강보험법 요양급여 기준에 관한 규칙 제5조를 위반했다"고 보고 과징금과 부당이득 환수 처분을 내렸다.

이렇게 시작한 법정 싸움은 관련 법리 변경으로 전환점을 맞았다. 지난 2019년 5월 30일 이른바 '네트워크병원 환수 사건'에서 대법원이 의료법과 건보법은 입법 목적이 다르다고 판결한 것이다다. 대법원은 의료법 위반이 곧바로 건보법에 따른 요양급여 환수 사유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 변호사는 "이 판결 이후 식품위생법에 따른 집단급식소 신고 위반과 정신병원 초과병상 시설 기준 위반으로 인한 요양급여 환수를 취소하라는 판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도 의료법 시행규칙 위반이 환수와 업무정지로 이어지는 것은 최근 법리에 반한다고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복지부와 공단은 논점을 바꿨다. 자율배식이 의료법 시행규칙이 아닌 요양급여 기준에 따른 의사 처방에 어긋나므로 환수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밥뚜껑 대신 의사 처방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의사 처방 문제라면서 근거 못 댄 복지부·공단…법원, 처분 취소

복지부와 공단은 과일과 채소를 추가로 제공한 것이 환자의 영양불균형을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자율배식은 의사 처방을 벗어나므로 환수 처분 사유가 된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근거는 대지 못했다.

환자 일반식은 복지부가 제정한 '한국인 영양섭취기준'을 기본으로 구성한다. '한국인 영양섭취기준'은 건강 상태 유지를 위한 각 영양소별 권장 섭취량과 평균 섭취량을 제시한다. 그러나 "과일 채소를 얼마나 먹는 게 의사처방에 걸맞는지"는 규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한국인 영양섭취기준에 비춰 봤을 때 '일반식'에 대한 의사 처방에 적정한 과일 내지 채소 섭취량에 대한 내용이 포함됐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과일과 채소를 추가로 자율배식했다고 해서 의사 처방에 의한 식사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건보법이 정한 요양급여 기준에 미달하거나 초과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요양병원 측도 "식사량은 환자 본인이 선택할 영역이다. 이를 막을 수도 없고 이를 막지 않았다는 이유로 급여를 환수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호소했다.

공단이 설정한 환수 처분 규모도 문제가 됐다. 별도 식이처방을 했거나 추가배식을 이용하지 않은 경우까지 모두 환수 대상에 포함했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100명 중 10명이 식이처방을 받고 90명은 일반식을 먹는 상황에서 환수 처분을 하려면 '위법하게' 과일·채소를 먹은 사람이 과연 몇 명인지 정확하게 알아내야 한다"면서 "그러나 공단은 이 100명분 식사가 전부 위법하다고 판단해 환수 처분했고 결국 기준이 불명확해졌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의료법 위반이 곧 환수 사유라는 명제가 항상 '참'은 아니다. 사무장 병원 같은 사례는 환수처분이 맞다. 그러나 그 사유가 요양급여 기준 일반 규정에 있는 경우에는 환수 여부를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밥뚜껑에서 시작한 사건은 재판부가 요양병원 측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고 복지부와 공단 측 처분을 모두 취소하면서 막을 내렸다. 복지부와 공단은 항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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