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과 부모가 참여하는 ‘DECODE’ 프로젝트
英 러프버러대 전규찬 교수 “진정한 변화 만들기 위한 연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한정된 의료자원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세계적인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영국에서는 전체 인구의 1%로 소수지만, 의료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발달장애인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들에게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연구도 시작됐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복합질환을 앓고 있는 발달장애인들의 새로운 통합 치료 모델 구축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는 ‘DECODE’(Data-driven machinE-learning aided stratification and management of multiple long-term COnditions in adults with intellectual DisabilitiEs) 연구가 그것이다.

영국에서는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가 높다. AI를 의료시스템에 적용하는 대규모 연구이기도 하지만 발달장애인들과 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연구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NHS)의 연구 파트너인 영국 국립보건연구원(NIHR)는 이 프로젝트에 약 44억원(£2,811,806) 규모의 예산을 투자했다.

발달장애인이 갖고 있는 복합질환에 대한 상호 작용을 이해하고, 이런 복합질환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나 앞으로 발생하게 될 질환을 예측할 수 있다면 의료뿐만 아니라 복지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발달장애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을 거라는 미래에 대한 투자인 셈이다.

프로젝트는 영국의 러프버러대학(Loughborough University)과 레스터셔 파트너십 엔에이치에스 트러스트(Leicestershire Partnership NHS Trust) 주도로 지난 4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책임연구자를 맡은 러프버러대학 전규찬 교수를 만나 이번 연구가 갖는 의미와 향후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전 교수는 러프버러대학 디자인과 크리에이티브 아트 스쿨의 사회·기술시스템 디자인 부교수이자 인간공학 연구의 인적 요소 전문가로 알려졌다. 약 20년 동안 의료 시스템 혁신과 의료사고 조사에 참여, 시스템 설계방식을 적용하고 가르쳐왔다.

영국의 러프버러대학(Loughborough University) 디자인과 크리에이티브 아트 스쿨의 사회·기술시스템 디자인 전규찬 교수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통합 치료 모델 구축을 위한 연구를 이끌고 있다. 
영국의 러프버러대학(Loughborough University) 디자인과 크리에이티브 아트 스쿨의 사회·기술시스템 디자인 전규찬 교수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통합 치료 모델 구축을 위한 연구를 이끌고 있다. 

- 프로젝트에 투입된 예산만 44억원 정도다. 이 연구가 영국에서 주목받게 된 배경이 있나.

영국에서도 의료자원을 어떻게 공평하게 분배할 것인지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영국에서 발달장애인은 전 국민의 1%다. 그럼에도 이렇게 큰 예산을 투자해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놀랍기도 하다. 코로나19로 발달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걱정이 커졌고 영국 안에서 정치적인 이슈로 부각되면서 관심을 받았던 것 같다.

또 단일 질병 치료 시스템으로 의료 시스템 자체가 나눠져 있다 보니 단일 질병 쪽으로는 엄청난 투자가 이뤄졌지만 복합질병에 대한 연구나 투자는 부족했다. 이에 기존의 통계적인 방법을 사용해 복합질병의 패턴이나 클러스터를 이해하는데 한계도 있었다. NHS에서도 복합질병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니 투자 해야겠다는 필요를 느낀 것 같다. 더욱이 기존의 방법이 아닌 인공지능을 활용해 복합질병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다는 가능성을 보고 영국 정부 차원에서도 야심차게 투자를 결정한 것 같다.

- 발달장애인의 복합질병의 패턴과 클러스터를 이해하고 예측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다운증후군의 경우 청력과 시력, 심장 등에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식으로 하나의 클러스터가 발생될 때 나타날 수 있는 (증상) 패턴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간질이나 신장, 청력, 소화기 등 증상이 나타나는 발달장애 클러스터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질병의 진행상태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아주 정확하게 나오지는 않겠지만 간질이 있고 발달장애가 있을 경우 5년 후 70%의 확률로 청력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예측할 수 있을 거다. 이처럼 발달장애의 클러스터와 진행상태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면 새로운 환자가 왔을 때 그에 맞게끔 복합질환에 대응할 수 있다.

또 발달장애인들은 아픈 증상에 대해 커뮤니케이션을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dignostic overshadowing’이라고 하는데 이 때문에 항상 진단이 지연돼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그러니 이 과제의 목적도 증상이 나타나기 전 미리 예측을 해보자는 것이다. 가족들도 환자가 무엇인가 커뮤니케이션을 하려고 할 때 ‘혹시 그게 아닐까’ 쉽게 생각할 수 있으니 빨리 대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영국국립보건연구원(National Institute for Health Research, NIHR)에 따르면 영국의 발달장애인 중 67%가 두 가지 이상의 복합질환을 앓고 있으며, 이들이 갖고 있는 복합장애는 평균 12개 정도다. 

- 연구 예산 뿐 아니라 참여인원도 많은 대규모 프로젝트인 만큼 연구를 진행하며 어려움도 많을 것 같다.

프로젝트에는 의료정보학, 데이터사이언스, 인공지능, 인간공학, 시스템 디자인, 윤리학, 사회학과 신경정신과 전문의 등 다양한 전문가 25명이 한 팀으로 구성돼 있으며, 발달장애 전문의와 함께 전체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일단 연구할 수 있는 데이터가 있다는 점은 감사한 일이지만 데이터에 접근하기 위해 허가 받는 것조차 어려움이 있었다. 각 데이터를 제공하는 주체마다 데이터 관련 정책들이 다르다.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지만 결국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데이터를 통해 나온 결과들이 진짜 의미가 있는지 등을 고민하기 위해 발달장애인들을 연구에 참여시키는 일도 굉장히 중요하다. 이들이 편안한 환경에서 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공간도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부모들의 의견만 청취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발달장애인을 누가 돌봐야 하는지, 이럴 땐 연구팀에서 어떤 식으로 커버를 해줘야 할지 준비가 필요하다. 이에 연구에 참여하는 이들을 돕기 위한 간호사, 언어치료사 등도 팀에 포함시켰고, IRB(Institutional Review Board) 승인을 받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 이번 연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

이번 프로젝트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데이터만 갖고 어떤 인사이트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발달장애인들이 직접 참여해 새로운 발견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변화들을 모두 끄집어 내 전인적인 접근을 하려는 게 연구팀의 의도다. 과제를 제출하면 이를 검토하는 사람들 중 전문가도 많지만 발달장애인이나 가족들도 검토한다. 이 과제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정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연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2년 반 동안 진행되는 이번 과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후 인공지능(AI) 기반의 임상의사결정시스템(CDSS, Clinical Decision Support System)에 대한 연구도 필요할 것이다. 발달장애인들에 대한 질병을 미리 예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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