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위원회 구조조정 대상 포함…복지부 산하 되나
전직 위원장들 "10여 년 쌓은 생명윤리 자산 잃는다" 우려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예산 절감과 행정 효율화로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되며 존폐 위기에 몰렸다(사진 출처: 대통령실).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예산 절감과 행정 효율화로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되며 존폐 위기에 몰렸다(사진 출처: 대통령실).

대통령실 재편 바람에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존폐 위기에 처했다. 보건복지부 산하로 축소 배치까지 점쳐지는 상황에서 생명윤리 논의 기반이 뿌리째 흔들린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 5일 윤석열 대통령은 예산 절감과 행정 효율화를 위해 "20개 대통령 직속 위원회의 과감한 정비"를 주문했다. 이어 8일 대통령실이 각 위원회 존치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히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은 기정사실화됐다. 이번 조치로 정부가 예상하는 절감 비용은 연간 250억원 규모다. 

20개 위원회 가운데 6~7개 위원회만 남긴다는 방침에 어느 위원회가 존속할지 갖가지 '경우의 수'가 나왔다. 그러나 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어느 곳에도 들지 못했다. 업무 영역이 밀접한 복지부가 있는데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따로 두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복지부 산하로 이동한다는 예측이 나온다.

그러나 전문가들 생각은 다르다. 생명윤리심의위원회 제4기 위원장을 맡았던 박상은 효산의료재단 샘병원 대표원장은 지난 29일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생명윤리 관련 이슈는 결코 복지부 안에서만 해결할 수 없다. 위원회 구성 자체가 이를 전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외에도 교육부·법무부·산업통상자원부·여성가족부 장관이 당연직 정부위원으로 참여한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 지위를 잃으면 관계 부처 간 협의 테이블 하나가 사라지는 셈이다.

박 원장은 "한 위원회 안에서 6개 부처가 공조하고 민간 전문 위원이 힘을 모아 적은 예산만으로도 생명윤리 관련 제도를 정착시켰다. 이를 위해 지난 17년간 간접적으로 투입한 사회적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또 이를 통해 얻은 사회적 가치도 헤아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눈앞의 13억원 아끼려다 수천억원대 사회적 자산 잃는다

생명윤리심의위원회 출발은 '황우석 사태'로 불리는 황우석 교수팀의 배아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과 관련 깊다. 지난 2005년 출범한 제1기 위원회는 황 교수 연구를 심의·조사해 윤리적 문제점을 밝히고 감독 시스템 강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는 체세포복제배아 연구 관련 대통령령 마련 등 생명윤리 법·제도 정비로 이어졌다.

제2기 위원회를 거쳐 제3기 위원회는 임종 환자의 연명의료결정 제도화를 추진했다. 박상은 원장이 위원장으로 재직한 제4기는 세월호 참사 이후 생명존중선언문 제정과 유전자검사제도 개선방안을 다뤘다. 지난 2017년에는 국가생명윤리위원회 아시아·태평양지역회의가 한국에서 개최됐다. 황우석 사태가 벌어졌던 나라가 약 10년 만에 "아시아에서 생명윤리 법·제도로 손꼽히는 국가"가 된 것이다.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을 주제로 지난 2021년 열린 생명윤리심의위원회 제6차 국가생명윤리포럼 모습(사진 출처: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을 주제로 지난 2021년 열린 생명윤리심의위원회 제6차 국가생명윤리포럼 모습(사진 출처: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이렇게 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구축한 사회적 논의 기반은 생명공학과 기술 분야에 머물지 않는다. 초고령화사회 진입으로 부각된 완화의료·호스피스 제도는 물론 최근 관련 개정법안 발의로 논쟁이 된 의사조력 존엄사도 생명윤리심의위원회 주요 의제다. 이에 대해 박 원장은 "복지부와 과기정통부를 비롯해 6개 정부 부처가 공조하기에 가능한 일이자 6개 부처나 위원회에 포함된 이유"라고 했다.

박 원장은 "시험관 시술부터 존엄사 문제까지 과학은 새롭게 발전하고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점점 심화되고 있다. 생명윤리심의위원회를 중심으로 생명공학과 생명윤리 이슈에 더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원장은 "전문 위원을 보강해 조직 규모를 확대하고 예산을 10배 이상 증액해도 부족할 시점에 도리어 복지부 산하 생명윤리위원회 시절로 돌아가자는 정반대 이야기가 나오니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면서 "위원회를 폐지해서 아낄 수 있는 예산이 13억원 정도라고 한다. 정부가 어떤 셈법을 가지고 계산했는지 모르지만 지금의 선택이 지난 17년간 쌓아온 수백, 수천억원 규모의 사회적 자산을 모두 잃는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했다.

제2의 '황우석 사태'·'세월호 참사' 막아야…생명윤리 보호 대책 강구

생명윤리심의위원회 폐지가 '제2의 황우석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생명윤리심의위원회 폐지가 '제2의 황우석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황우석 사태를 심의한 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존폐 위기를 맞으면서 '제2의 황우석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생명공학 발전과 연구자 성취가 강조되고 이에 대한 압력이 나날이 커지는 상황"에서 생명윤리에 대한 인식이 무뎌지면 그만큼 '편한 길'로 가고자 하는 유혹이 커지기 때문이다. 제5기 위원장이었던 이윤성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장은 위원회 폐지로 생명윤리 논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했다.

이 원장은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황우석 사태를 겪으며 생명윤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제도를 키워왔다. 10여 년이 지났다고 해서 이를 모두 저버리면 (황우석 사태와) 비슷한 큰일이 또 일어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위원회를 정말 없애야 한다고 (대통령실이 결정)하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생명윤리를 지키기 위한 사회적 노력은 결코 멈춰선 안 된다"면서 "이를 소홀히 하면 우리 사회는 또다시 황우석 사태나 세월호 참사를 맞닥뜨리게 된다"고 했다.

이런 위기감 속에 생명윤리심의위원회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활로 모색'도 필요하지만 생명윤리 보호 방안도 강구하기 위해서다. 현재 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제6기 김봉옥 위원장 제안으로 전·현직 관계자들이 30일 저녁 긴급 회동을 갖고 앞으로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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