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청과 전공의 지원율 20%대가 불러온 파장
야간 응급실서 소아 환자 볼 소청과 의사 부족
소청과 교수 중 절반이 ‘당직’…“과로로 쓰러지기도”
“전문 인력 양성 안돼 소아 중증환자 받아줄 병원 없어”

대학병원 응급실들이 소아 진료를 중단하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 부족 때문이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대학병원 응급실들이 소아 진료를 중단하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 부족 때문이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서울 지역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안내사항’이 공지됐다. 초등학생 이하 환자는 '소아내과' 진료가 불가하고, 진료 가능한 연령대여도 입원이 필요한 상태면 다른 병원으로 전원이 불가피하다는 내용이었다. 소아 환자를 진료할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은 지난 2020년 1월부터 2021년 7월경까지 이어졌다. 

1년이 지난 지금은 사정이 조금 나아졌지만, 언제 또 응급실에서 소아 환자 진료를 중단하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다른 대학병원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의료계에 따르면 일산백병원 응급실도 소아 환자를 받지 않고 있다. 또 다른 대학병원 응급실은 밤 12시까지로 소아 진료 시간을 제한했다.

소청과를 제외하고 응급의학과만 진료를 하기로 방침을 하거나 소아 환자 진료 시간을 제한하는 응급실이 늘고 있다. 진료가 제한되는 시간대는 야간이다. 만 2세 미만 영·유아 응급실 진료를 중단한 곳도 있다.

대학병원 응급실이 소아 환자 진료를 중단하거나 시간을 제한하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기피과’로 전락한 소청과의 현실이 있다. 전공의 지원이 매년 줄면서 병원에 남아 있는 의사들의 업무 부담은 커지고 열악해진 근무환경에 지원자는 더 감소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청년의사가 전국 수련병원 55곳을 대상으로 2022년도 전공의(레지던트) 전반기 지원 현황을 조사한 결과, 소청과를 지원한 전공의는 42명뿐이었다. 소청과 전공의 충원율은 지난 2020년 74.1%에서 2021년 38.2%로 급감했으며, 올해 27.5%로 떨어졌다.

그렇다 보니 중증 소아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전문의 양성 기회도 줄고 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에 따르면 수도권 대학병원 사정은 그나마 낫지만 전공의 부족으로 지방 대학병원의 50% 정도는 교수들이 번갈아 가며 당직을 서고 있다.

소청과 의사 부족으로 소아 응급환자를 위해 24시간 365일 진료하기 위해 지정된 소아전문응급센터 가운데 시간제한 없이 24시간 응급실을 운영할 수 있는 곳은 38%에 불과하다. 소아 환자 진료를 위한 연령별 의료장비를 갖춰야 하고 소청과와 응급의학과 전문의 또는 3년차 이상의 전공의가 소아응급 전담의사로 상주해야 하지만 인력이 없어 소아 진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청과학회 보험이사인 노원을지대병원 은병욱 교수는 “소청과 전공의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나가는 사람은 있지만 들어오는 사람이 없다. 우리 병원만 해도 전공의가 연차 당 2명씩 총 8명이었지만 재작년 6명이 되고 지난해 4명이 됐다. 이번에 또 안 들어오면 2명이 되고 그 다음 해는 전공의가 아예 없는 것”이라며 “전국적인 현상이라 위기감을 많이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은 교수는 “최근 많은 병원들이 응급실에서 야간에 진료하는 소아 환자 연령을 제한하거나 진료 시간대를 제한하고 있다. 응급실에서 소아·청소년 진료를 포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며 “(소청과) 전공의도 부족하고 전문의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데다 숙련된 간호사들도 점점 없어져 소아 정맥주사도 놓기 어렵다 보니 만 2세 미만 영·유아는 보기 어려운 곳도 많다”고 했다.

경기도에 있는 A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소아응급은 필수의료 중 하나로 봐야 하는데 소청과가 수년 째 전공의 미달이다. 대부분 병원에 소청과 전문의가 부족하고  (전공의들이) 지원 자체를 안 하다 보니 전공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환자는 아니었지만 아기 상태가 안 좋아 타 병원 응급실 40~50곳에 전화를 돌려봤지만 받아줄 병원이 하나도 없었다”며 “인력이 없어지면서 소아 중환자를 아예 받을 수도 없게 됐다“고 토로했다.

전공의들도 심각한 상황을 체감하고 있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여한솔 회장은 “가장 문제가 되는 곳이 소청과다. 소아 진료 자체가 안 되는 곳들이 너무 많다. 소아 응급실이 안 열리고 소청과 전공을 하려는 의사가 없다보니 의국마다 ‘우리 의국은 소아과 전공의는 응급실을 안 본다’는 게 어필하는 수단이 됐다”고 말했다. 여 회장은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다. 

여 회장은 “병원 입장에서는 소청과를 어떻게든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교수들이 당직을 선다”며 “교수들이 근무도 해야 하고 당직까지 서니 지쳐 쓰러진 경우도 있다. 실제로 문을 닫아 버리는 병원들도 있다”고 전했다.

인력이 부족해 소아 응급실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현장 의료진만 발을 동동 구를 뿐이다. 소위 돈 잘 버는 진료과가 아니다보니 병원에서도 인력 충원의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결국 수가체계가 바뀌거나 소청과 의사 고용을 의무화하는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은병욱 교수는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뇌출혈 사망 건도 마찬가지다. 같은 신경외과 전문의여도 병원이 잘 뽑는 분야가 있고 그렇지 않은 분야가 있다"며 "소위 돈을 잘 못 버는 분야를 전공한 의사는 병원에서 뽑아주질 않는다. 소청과가 딱 그렇다”고 말했다.

은 교수는 “예를 들어 뇌출혈 수술할 수 있는 의사를 2명 이상은 무조건 고용해야 된다는 식으로 제도화하지 않는 이상 수가를 조정하는 수밖에 없다”며 “소청과도 몇 병상 이상이면 의사를 무조건 고용해야 한다는 식의 하면 제도적으로 수월할지도 모르겠지만 현실을 무시하고 규정만 그렇게 해놓으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했다.

중증 소아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인력양성을 위해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상급종합병원 소청과 C교수는 “인력 충원을 위한 방안들을 고민해야 한다. 소아 호스피탈리스트 등이 들어와 부담을 나눠지는 등 인력 충원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며 “다시 의사로서 소명을 살려주는 것은 국가 차원의 지원 말고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