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인 평가기관으로서 국민 신뢰 얻은 30년
코로나19, 국시 거부 사태 지나 사상 첫 CBT 도입
시험평가 수준 높이고 연구기관으로 역할 확대를

창립 30주년을 맞은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 새로운 30년을 준비하고 있다. 보건의료인 국가시험 주관기관으로서 인공지능(AI), 메타버스(metaverse), 가상현실(VR) 기술 도입으로 평가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연구기관으로서 정체성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국시원은 지난 1992년 민간 평가기관인 한국의사국가시험원으로 출발해 6년만인 1998년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으로 확대 개편됐다. 의사를 비롯해 정부가 주도하던 보건의료인 면허와 자격시험 분야에 민간시대를 열었고, 지난 2007년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후 2015년 특수법인으로 출범했다.

의사국시위원장이자 이사로, 그리고 제8대 원장으로 국시원과 20년 넘게 연을 이어온 이윤성 원장은 지난 30년을 국민에게 신뢰받는 기관으로 거듭난 시기로 평가했다. 앞으로 다가올 30년은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보건의료계 선도기관으로 도약할 때라고 했다. 이 원장은 의사인력과 면허 관리, 윤리 문제 전문가로 활동했다. 국내 법의학 발전을 이끈 주역이기도 하다.

이 원장 임기 3년간 국시원은 대내외적로 큰 사건을 겪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감염병 팬데믹 시대 안전하고 객관적인 국시 운영 책임을 맡았다. 지난 2020년 공공의대 설립과 의사 정원 확대 추진에 반대해 일어난 젊은 의사 단체행동과 의대생 국시 거부 사태로 태풍의 한가운데 서기도 했다.

의사 국시가 시작된 지 70년이 된 올해 1월 제86회 의사 국가시험 필기시험은 사상 첫 컴퓨터 기반 시험(Computer Based Test, CBT)이 도입돼 발전된 시험 형태를 선보이기도 했다.

지난 4월 공식적으로 임기를 마친 이 원장은 '다사다난한 때'였다면서도 국시원 30년 역사에 자부심을 가지게 된 시기였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간 성과에 매여 자칫 정체해선 안 된다며 보건의료인 평가기관으로서 정체성을 지키며 스스로를 끝없이 평가하며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립 30주년을 맞은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이윤성 원장은 그간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발전을 거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립 30주년을 맞은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이윤성 원장은 그간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발전을 거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국시원 창립 30주년에 임기를 마무리하게 됐다. 그간 소회를 밝힌다면.

국시원은 지난 1992년 한국의사국가시험으로 개원해 42년간 정부가 주관했던 의사 국시 민간시대를 열었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있었다. 90% 수준이던 합격률이 국시원 첫 주관 시험에서 64%로 떨어졌다. 기관도 출제자도 응시생도 갑작스런 변화에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를 실패로 규정하고 원상복귀한 것이 아니라 더 고민하고 노력해 6년만에 보건복지부가 관리하던 전 직종 시험을 주관하게 됐고 새로 생겨난 직종도 국시원이 관장하게 됐다. 처음 1, 2명이 일하던 기관이 이제 직원 수 130여명이 넘는 기관으로 거듭났다. 의사 1종에서 시작해 이제 24개 직종 면허와 자격시험을 관리·감독하며 국민이 믿을 수 있는 평가기관으로 자리잡았다. 한 기관으로서 30년만에 이룬 큰 성과다. 

개인적으로는 2대 원장을 지낸 백상호 원장님 요청을 받고 의사 국시에 관여한 게 여기까지 오게 됐다. 한 5년만 일하면 어느정도 기틀이 잡힐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게 10년이 되고 이만큼 세월이 흘렀다. 일하면서도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많았다. 보람차단 생각도 들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사실 백 원장님 요청도 국시에 법의학 과목 만들 속셈으로 수락했는데 못 했다(웃음). 퇴임 후에는 다시 법의학 분야에서 사회에 일조할 방안을 찾을 생각이다.

- 임기 중 코로나19 사태는 물론 의대생 국시 거부 등 굵직한 사건이 연이어 벌어졌다. 당시 국시 거부 의대생 구제를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는데.

전체 보건의료 시스템 측면에서 의사 면허를 받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당사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당해연도 의사 인력을 충분히 배출하지 못하면 전체 의료기관과 시스템에 영향을 미친다. 그 여파는 장기적으로 이어지고 부담이 누적된다. 국시원 입장에서 정말 어려운 시기였다. 국시 거부에 대한 사회적 분노가 워낙 커 섣불리 무언가 결정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시험을 거부한 학생 외에 응시하겠다는 학생도 분명 있었다. 국시는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치러야 했고 시험을 거부한 학생들도 응시할 방안을 찾아야 했다. 직원들이 정말 고생했다. 다행히 구제책을 찾아 대부분 의사 면허를 받았지만 끝내 큰 손해를 본 이들도 나왔다.

개인적으로 국시 거부는 미숙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의대생들이 시험 거부라는 선택으로 의사를 표현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뒤에서 행동을 같이 하던 이들은 전략을 제대로 짜지 않았고, 그 손해가 학생들에게 돌아갔다. 결국 선배 의사들이 떠난 전쟁터에 학생들만 남아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고 오만하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괴롭고 슬픈 일이다.

- 의사 국시에 70년만에 CBT가 도입된 것도 중요한 사건이자 성과다. CBT 도입 의미와 앞으로 발전 방향은?

의사 국시에 영상과 소리가 등장한 것이 CBT가 불러온 큰 변화다. 앞으로 메타버스와 VR을 도입하면 인터랙티브(interactive)한 시험으로 거듭날 것이다. VR 기술이 도입되면 필기와 실기 시험을 융합해 의사 국시도 상설 시험이 가능해질 것으로 본다.

인터랙티브한 시험은 실제 임상 현장과 유사한 환경에서 응시생이 평가받는다는 뜻도 있지만 응시생 각자 능력과 수준에 맞춘 평가가 가능하다는 뜻도 된다. 무조건 한날 한시 똑같은 문항으로 일률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없어진다. 꼭 오지선택형이 아니어도 응시자 각각의 생각과 선택을 평가하면서 객관성을 갖출 수 있다. 물론 이런 수준까지 구현하려면 앞으로 최소 10여년은 걸릴 것이다. 하지만 이번 CBT 도입으로 그 첫발을 뗐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의사 국시를 시작으로 다른 직종도 비슷한 발전 단계를 밟을 것이다.

- 투자 부담이 상당할 것 같다. 국시에 기술 접목이 꼭 필요하냐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초기 투자 비용은 크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효과가 상당하다. 현재 국시 필기 시험은 물론 실기 시험을 실시하기 위해 드는 비용이 엄청나다. 필기와 실기를 결합하고 온라인이나 컴퓨터 장비로 시험을 쳤을 때 시간과 비용 절약을 생각하면 꼭 해야 한다고 본다. 미국도 이미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실기 시험을 포기하고 VR로만 평가하는 방안에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고 있다.

국시원의 경우에는 코로나19로 전에 없던 방역 예산 지출이 대폭 늘었다. 그러면서 연구 부분 예산이 타격 받았다. 예산 운용도 유연하지 않아 어려움이 컸다. 국시원 재정 원천인 응시료도 지난 6년간 동결됐다. 몇몇 시험 응시자 수가 늘었지만 기관 발전에 투자하기에는 역부족했다. 앞으로 코로나19 같은 사태에 대비할 예산을 유지하면서 기관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ICT 기술 도입은 필수다.

- 다음 30년을 바라볼 때 국시원이 나아갈 청사진을 제시한다면. 

국시원이 보건의료인 시험평가기관을 넘어 연구기관으로 그 역할이 확대되길 바란다. 국시원이 가진 공신력과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다. 연구기관으로 자기매김하는 과정에 국시 관련 연구뿐만 아니라 보건의료인력 자체를 다룬 연구도 맡았으면 좋겠다. 보건의료인력 수요 예측과 조절 정책 연구가 여기 포함된다. 자격 혹은 면허를 부여하면 이를 종신 유지할지 아니면 재평가할지도 주요 연구 주제로 삼을 수 있다.

- 두 주제는 이미 각 전문학회와 협회에서도 다루고 있지 않나.

이 주제는 모두 중립적 입장에서 객관성과 전문성을 토대로 다뤄야 하는 영역이다. 지금 적정 인력 수준을 연구해도 학회 연구 결과와 정부 기관 결과, 대한의사협회 내부 결과가 정반대로 나온다. 한쪽은 항상 부족하다고 우려하고 한쪽은 넘쳐서 문제라고 한다. 당장 해결은 못해도 개선되는 양상은 보여야 하는데 의견이 엇갈리기만 하니 교착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 돌파구를 반드시 국시원이 마련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이나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도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으로 안다. 의료계가 이런 고민을 함께 나누고 공감대를 만들어 객관적 평가가 가능한 거버넌스가 형성돼야 한다. 여기에 국시원이 참여해 역할하길 바란다. 현재 의료계 지형상 쉽지 않은 일이라 개인적 희망사항에 가깝다. 

- 국시원이 의료윤리 문항 개발에 더 투자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주로 국회가 요구하는 사항이다. 국회의원들은 의사 윤리의식이 땅에 떨어졌으니 시험 문제를 많이 내라고 한다. 그래서 오지선택형 의사윤리 문항을 대폭 늘리면, 그때부터 의사 윤리의식이 신장되고 더 윤리적인 의사가 탄생하나? 윤리는 그런 식으로 함양되지 않는다. 윤리는 평가 이전에 교육 문제다. 그렇다고 강의실에 학생들을 붙잡아 놓고 PPT만 보여줘도 안 된다.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행동하라’고 외우게 하지 말고 직접 체험하고 사고할 힘을 키워줘야 한다. 인문사회의학 수업도 늘어야겠지만 무엇보다 의대생들에게 시간이 필요하다. 나 홀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 의사의 윤리가 무엇인지, 나는 무엇을 느끼고 남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각자 곱씹어볼 시간을 줘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의대에는 그럴 여유가 없다.

여기에는 국시원 잘못도 있다. 시험을 너무 어렵게 낸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지향하는 의대생이 산부인과 전문의가 쓸만한 지식까지 섭렵해야 한다. 교수들은 시험 걱정에 온갖 전문 영역을 다 가르치고 학생들은 6년간 죽도록 공부만 한다. 스스로 채찍질하며 간신히 버티는데 여기서 남 생각할 여유와 배려가 생겨날 리 없다.

- 국시원장으로서 현재 보건의료 인력 양성 시스템을 평가한다면.

보건의료 시스템은 다른 산업과 달리 기계나 시스템으로 대체 불가능한 영역이 커 인건비가 많이 든다. 따라서 각 나라 정부가 의료 문제를 국가 주요 과제로 설정하고 보건의료인력 양성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한다. 그러나 한국은 1970년대 국민건강보험으로 보건의료를 국가가 장악하고도 여기서 일할 사람을 기르는데 투자는 하지 않았다. 개인이 공부하고 시험치고 자격을 얻으면 국가 시스템에 그대로 밀어넣을 뿐이다. 그러니 국가가 헌신을 요구할 때 ‘왜 내가 희생해야 하냐’는 반발이 나온다. 이런 균열이 계속되면 언젠가 보건의료 시스템에도 부작용이 생긴다. 어떤 시스템이든 30~40년이 지나면 긍정적인 모습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 커진다. 경각심을 가지고 개선할 때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국시원 비전은 ‘국민이 신뢰하고 감동하는 시험평가 기관’이다. 감동은 둘째치고 신뢰는 받아야 한다. 국시원은 믿을만하다는 평가를 반드시 획득해야 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임직원이 이를 위해 노력했다. 국시원장으로서 우리 기관이 지난 30년간 쌓아온 신뢰에 자부심을 느낀다.

물론 지금 국시가 완전무결하지는 않다. 그렇게 느낀다면 분명 오만이다. 부족하고 불완전한 만큼 끊임없이 개선해야 한다. 그 의지가 지난 30년간 국시원을 떠받친 기둥이 됐다. 그리고 앞으로 국시원이 새로운 30년을 나아갈 동력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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