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브레첸의대를 가다①] 100여개국 유학생, 영어 수업
헝가리 의대들, 1987년부터 영어 교육 과정 운영
“WFME 인증 영어 과정, 유독 한국에서만 문제제기”

국내 행정 소송에 휘말린 외국 의대가 있다. 헝가리 의과대학 4곳이다. ‘공정한 사회를 바라는 의사들의 모임’(공의모)은 지난 3월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헝가리 의대에 부여한 국내 의사국가시험 응시자격 인정을 무효화하라는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 의대가 복지부 인정을 받을 당시 기준을 다수 위반했다는 게 그 이유다. ‘학위 장사’이며 부실한 교육을 받는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에 청년의사는 지난 5월초 헝가리 의대 4곳 중 한 곳인 데브레첸(Debrecen) 의대를 찾았다. 헝가리 의대는 모두 국립대이며 데브레첸의대 외에 세멜바이즈(Semmelweis)·페치(Pécs)·세게드(Szeged)의대가 있다.

헝가리 데브레첸대 전경
헝가리에는 의대가 총 4곳 있으며 모두 국립대다. 사진은 헝가리 데브레첸에 있는 데브레첸대 전경. 

[데브레첸=송수연 기자] 헝가리 데브레첸의대 현지에서도 한국 내 논란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35년 동안 운영해왔으며 세계의학교육연합회(World Federation for Medical Education, WFME) 인증도 받은 영어 교육 과정이 뒤늦게 한국에서만 논란이 된다는 게 의아하다는 것이다.

데브레첸의대뿐만 아니라 헝가리 의대 4곳 모두 지난 1987년부터 영어 교육 과정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의대 입학 정원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정부가 의대별로 강의실 등 교육 자원을 평가해 배정한다. 이는 헝가리어와 영어 교육 과정 모두 똑같이 적용된다.

이에 따라 데브레첸의대가 배정받은 입학 정원은 헝가리 학생 260명, 유학생 280명으로 영어 교육 과정 정원이 더 많다. 헝가리 학생들만 학비가 무료이다. 현재 한국을 비롯해 100여개국에서 온 유학생이 영어 교육 과정을 통해 의사의 꿈을 키우고 있다. 국가별로는 이스라엘 학생이 가장 많으며 유럽뿐만 아니라 나이지리아, 이란, 요르단 등 중동 지역 학생들도 많다. 영어 교육 과정은 헝가리 학생들도 지원할 수 있다.

특히 데브레첸의대는 다른 헝가리 의대와 달리 ‘분교(Branch School)’로 인정한 거창국제학교를 통해서만 한국 입학생을 선발한다. 데브레첸의대에 입학하려면 거창국제학교 2년 6개월 교육 과정을 거친 뒤 입학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입학시험은 물리·화학·생물학 필기시험과 구술시험으로 구성됐다. 이 과정을 거쳐 데브레첸의대에는 매년 20명 안팎의 한국 학생들이 입학한다. 또한 입학 전 2주간 헝가리어 특강(Crash Course)을 이수하고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왼쪽부터) 지난달 3일 헝가리 데브레첸의대에서 만난 내과 퓔뢰프 페테르(Fülöp Péter) 교수와 해부학과 스츄 페테르(Szücs Péter), Gaal Botond 교수, 생물물리학·세포물리학과 니잘로스키 에니코(Nizsaloczki Enikő) 교수는 헝가리 의학교육과 영어 교육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왼쪽부터) 지난달 3일 헝가리 데브레첸의대에서 만난 내과 퓔뢰프 페테르(Fülöp Péter) 교수와 해부학과 스츄 페테르(Szücs Péter), Gaal Botond 교수, 생물물리학·세포물리학과 니잘로스키 에니코(Nizsaloczki Enikő) 교수는 헝가리 의학교육과 영어 교육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영어 사용 오히려 권장, 왜 문제인가?”

유학생들은 데브레첸의대에 입학한 후에도 헝가리어 수업을 들어야 한다. 3학년 2학기까지 총 18학점을 이수한 학생만 4학년(본과 2학년)부터 시작되는 임상실습교육을 받을 수 있다. 헝가리 의대도 6년제이지만 한국과 달리 의예과(예과)와 의학과(본과)를 구분하지 않는다. 또한 한국 의대와 다르게 1학년(예과 1학년) 때부터 해부학 수업이 있으며 과목별 평가는 필기시험와 구술시험으로 진행된다.

특히 해부학은 헝가리 학생이나 유학생 모두에게 유급률이 높은 과목으로 ‘악명’이 높았다. 이에 대해 해부학과 스츄 페테르(Szücs Péter) 교수는 “교육 수준이 고등학교 때와는 다르기 때문에 학생들이 초기에 적응하는데 힘들어한다. 하지만 해부학 수업을 통해 고등학생이 아닌 의사를 준비하는 의대생이라는 점을 알 수 있도록 엄격하게 가르치고 있다”며 “유급률이나 평균 성적에서 헝가리 학생과 유학생 간 차이는 없다”고 말했다.

구술시험 비중이 큰 이유에 대해서는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게 교수들의 설명이다. 필기시험인 중간고사를 통과해야 구술시험을 볼 수 있다. 구술시험은 교수와 1대 1로 진행된다.

내과 퓔뢰프 페테르(Fülöp Péter) 교수는 “환자와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중요하다. 환자와 대화할 때 적어서 하지 않고 대면으로 진료한다. 필기시험 외에 구술시험을 보는 이유”라며 “말로 번지르르하게 포장해도 3분 안에 그 학생이 제대로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파악할 수 있다. 부정행위도 필기시험보다 구술시험이 더 적다”고 말했다.

영어 교육 과정에 대해 교수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헝가리어 수업뿐만 아니라 영어로도 수업을 준비해야 하지만 오히려 본인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헝가리 학생들과 똑같이 헝가리어로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주장 자체를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퓔뢰프 교수는 “국제 언어인 영어로 수업을 하는 게 왜 문제인가. 데브레첸의대 영어 교육 과정은 세계보건기구(WHO)와 WFME로부터 인증을 받았다. 오히려 장점이 더 많다”며 “의학 논문도 다 영어다. 교수들에게도 영어 사용을 권장하고 있으며 이는 승진과도 관련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구술시험을 볼 때 헝가리 학생에게 영어로 물어보고 영어로 답하도록 하기도 한다”고도 했다.

생물물리학·세포물리학과 니잘로스키 에니코(Nizsaloczki Enikő) 교수는 한국 학생들이 우수한 성적을 유지한다고 했다. 중간고사인 필기시험에서 상위 20명을 선정해 기말고사인 구술시험 면제권을 주는데 그 중 10명이 한국 학생이었다는 것이다. 니잘로스키 교수는 “올해 생물물리학 시험에서 상위 20명을 뽑았는데 10명이 한국 학생이었다”며 “한국 학생들은 꾸준히 열심히 공부하고 성적도 상위권이 많다”고 말했다.

데브레첸의대 국제교육센터장인 예나이 아틸라(Jenei Attila) 교수는 영어 교육 과정을 도입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데브레첸의대 국제교육센터장인 예나이 아틸라(Jenei Attila) 교수는 영어 교육 과정을 도입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국제 인증도 받았는데 유독 한국에서만 문제 제기, 당혹스럽다”

입학보다 졸업이 더 어렵다는 점도 헝가리 의대의 특징이었다. 이는 데브레첸의대도 마찬가지였다. 데브레첸의대에 따르면 입학생의 60~70% 정도만 졸업장을 받는다. 유학생만 졸업하기 힘든 게 아니다. 헝가리 학생들의 졸업률도 다르지 않다.

데브레첸의대 국제교육센터장인 예나이 아틸라(Jenei Attila) 교수는 “6년 안에 졸업하는 비율은 50% 정도이다. 이는 유학생이나 헝가리 학생 모두 똑같다”며 “교육 과정 자체가 똑같다.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느냐, 헝가리어로 진행하느냐만 다르지 그 내용에는 차이가 없다”고 강조했다.

예나이 교수는 “의대에 들어와 처음 해부학이나 병리학을 접하고 이 길이 나의 길인지 아닌지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한다”며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학생이 카데바를 처음 봤을 때 이를 수용할 수 있을지를 깨닫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예나이 교수는 “30년 이상 의학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고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만 영어 교육 과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예나이 교수는 “유학생이 헝가리에 남아서 의사로 활동하는 데 제약은 없다. 헝가리 의사면허만 있으면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예나이 교수는 “유럽에서 의대가 WFME 인증을 받은 국가는 헝가리가 처음이다. 독일도 아직 받지 못했다. 미국 교육부로부터도 인정받았다”며 “모든 대학에서 국제화는 중요한 문제다. 미국이나 영국은 영어가 기본이니까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에서는 모두 고민하고 있다. 독일도 독일어와 영어 교육 과정을 같이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데브레첸대 캠퍼스에 위치한 한국 유학생 기숙사. 헝가리 학생도 같이 사용하고 있다.
데브레첸대 캠퍼스에 위치한 한국 유학생 기숙사. 헝가리 학생도 같이 사용하고 있다.

“샛길로 면허 취득? 한국 의대보다 졸업 어렵다”

한국 학생들은 헝가리 의대에 대해 잘못 알려진 부분이 많다며 억울해했다. 한국보다 의대 문턱이 낮을 수는 있어도 졸업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헝가리 의대 4곳이 행정 소송에 휘말렸다는 소식에 한국 유학생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대응하지 않기로 했다.

데브레첸의대 한국학생회장인 박수진 양(5학년, 본과 3학년)은 “공부량이 많다. 1학년 때부터 해부학과 병리학 등을 공부해야 하고 구술시험도 본다. 카데바를 앞에 두고 설명을 하기도 한다”며 “1~2학년 때 해부학 유급률이 높다. 이 고비를 잘 넘기면 그 후에는 조금씩 나아진다. 의학 교육 과정 외에 헝가리어 수업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양은 “한국보다 의대 입학 커트라인이 낮을 수도 있지만 졸업은 한국 의대보다 더 어렵다”며 “헝가리 의대를 한국 의사면허를 따기 위한 ‘샛길’ 정도로 보는데 그렇지 않다. 그런 생각으로 오려는 학생이 있다면 말리고 싶다”고 했다. 복지부가 인정한 외국 의대를 졸업한 학생이 한국 의사국시를 보려면 별도 예비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박 양은 “임상실습 때 학생들에게 환자를 진찰해보라고 한다. 그때는 헝가리어를 사용해서 진찰한다. 학교 교칙에도 환자와 소통하기 위해 헝가리어를 배운다고 나와 있고 그렇게 사용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이어 “한국 유학생이 헝가리 의사면허를 받을 때 헝가리에서 의료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쓴다고 주장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헝가리 보건부 산하 면허발급처에 따르면 의사협회 가입이나 운영등록증(Operational Registry) 신청 시 헝가리어 자격 요건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헝가리 의사면허를 취득한 후 국외에서 일할 경우 ‘외국인신고서’에 서명한다”며 “이는 헝가리 내에서 의료행위를 하지 않겠으며 혹 헝가리에 돌아와 일하게 될 경우 의사협회에 등록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고 서약하는 신고서”라고 말했다.

윤현조 군(4학년, 본과 2학년)은 “시험이 너무 어려워서 한국에서 우려하는 검증되지 않은 학생들은 졸업하기 어렵다”며 “주변에서 헝가리 의대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런 사람들한테는 항상 쉽게 결정하지 말고 충분히 고민하라고 한다. 그만큼 쉽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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