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협회 김흥동 회장 '뇌전증 지원법 제정' 등 촉구

“정부가 뇌전증 환자 관리에 직접 나서지 않으면 편견과 차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최근 기자와 만난 한국뇌전증협회 김흥동 회장(세브란스병원 소아신경과 교수)은 뇌전증 환자들이 겪는 편견과 차별을 없애기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뇌전증협회 김흥동 회장은 국내 뇌전증 환자들에 대한 편견과 인식 개선에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하고 뇌전증 지원법이 통과돼야 한다고 촉구했다(사진제공: 세브란스병원).
한국뇌전증협회 김흥동 회장은 국내 뇌전증 환자들에 대한 편견과 인식 개선에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하고 뇌전증 지원법이 통과돼야 한다고 촉구했다(사진제공: 세브란스병원).

뇌전증은 뇌신경세포의 전기적 방전으로 인해 갑자기 이상 감각, 경련, 의식 소실, 기억 상실, 쓰러짐, 이상 행동 등 다양한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만성질환이다. 대뇌 겉질의 신경세포들이 갑작스럽고 무질서하게 과흥분하면서 부분발작이나 전신발작 등을 일으킨다. 

대부분의 뇌전증 환자는 발작이 없는 시기를 제외하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정상적인 생활을 한다. 환자 중 70%는 발작을 억제하는 항경련 약물을 투여해 조절되고, 증상을 유발하는 뇌의 병변을 제거하는 수술로도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뇌전증 환자들은 드라마 등에서 마치 귀신이나 악령이 씌워진 사람으로 취급되기 일쑤다. 이러한 낙인과 편견 때문에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고용과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는 등 차별을 겪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흥동 회장은 뇌전증환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아직까지 매우 부족하다"며 "뇌전증 환자들의 권익신장과 차별 철폐를 위한 국가적인 지원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김 회장은 현재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뇌전증 관리 및 뇌전증 환자 지원에 관한 법률안’(뇌전증 지원법)의 조속한 심의를 촉구했다.

김 회장은 “뇌전증 지원법이 몇 년 전부터 계속 상정되고 있지만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뇌전증 지원법은 지난 2020년 12월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 등 22명이, 2021년 9월에는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 등 11명이 발의했지만 현재 복지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된 채 심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뇌전증 지원법에는 뇌전증의 예방, 진료, 연구와 환자에 대한 지원, 인식개선과 차별방지 방안 등이 담겨 있다.

김 회장은 “뇌전증 지원법이 제정되면 국내 뇌전증 환자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인 편견과 낙인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뇌전증 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 등은 국내 문제만은 아니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있는 뇌전증 환자들의 권익신장을 위해 범국가적인 안전체계를 만들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22일부터 28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보건총회에도 ‘Global Action Plan on Epilepsy and other neurological disorders 2022~2031(뇌전증 및 다른 신경계 장애와 관련한 글로벌 실행 계획 2022∼2031)’ 결의안이 상정됐다. 

결의안은 뇌전증 환자들이 질환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많은 사회적 차별을 경험하고 있는 만큼 환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범국가적인 안전체계를 만들자는 내용이다. 뇌전증 및 기타 신경계 질환의 정책 우선순위 배정, 알맞은 진단, 치료 및 관리 시스템 구축, 치료 촉진 및 예방을 위한 제도적 교육 실행, 연구 분야 활성화 등을 촉구하고 있다.

김 회장은 "결의안과 함께 뇌전증 지원법이 통과돼 뇌전증으로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며 “앞으로도 뇌전증 환자들이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다.

“뇌전증, 고혈압·당뇨병처럼 만성질환으로 여겨줬으면”

한편, 종영된 SBS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7회에서는 연쇄살인마가 뇌전증 발작을 가장해 수갑을 풀고 도망가는 장면이 나온다. 응급처치 과정 중 볼펜을 입에 물리고 몸을 누르기도 한다. 하지만 뇌전증 환자가 발작을 일으킬 때는 어떠한 것도 입에 넣지 않아야 하며, 몸을 눌러서도 안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뇌전증협회 김덕수 사무처장은 “대부분의 발작은 5분 이내로 끝나는데 뇌전증 환자들은 그 짧은 시간 때문에 평생 차별을 받는다”며 “뇌전증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고 뇌졸중, 치매와 더불어 3대 뇌질환으로 비교적 흔한 질환이다. 정상적으로 살다가 나이가 들면서 뇌전증에 걸릴 수도 있다”고 했다.

김 처장은 “뇌전증에 대한 인식 개선 말고도 해결해야 할 게 너무 많다”며 “뇌전증도 그냥 우리 일상과 함께 하는 병, 고혈압과 당뇨병처럼 만성질환으로 여겨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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