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교수 심리부검 결과, 만성 과로로 번아웃 상태
유족, 사학연금공단에 ‘직무상 유족보상금’ 청구
공단 “직무 연관성 없다” 부결…유족, 소송 제기

결핵과 비결핵항산균(NTM) 분야 권위자였던 고원중 교수가 숨진 지 3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 유족들은 힘든 싸움을 시작했다. 고 교수의 죽음을 ‘직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위해서다.

고 교수는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에서 결핵과 비결핵항산균 환자를 진료하면서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규모로 코호트를 만드는 등 관련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18년 동안 근무해온 삼성서울병원을 떠나 이직을 앞두고 있던 지난 2019년 8월 21일 저녁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의료진과 환송회를 가진 뒤였다.

유족은 고 교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렸다고 했다. 고 교수는 주 80시간 이상 근무하면서 추간판 질환을 앓는 등 건강상태가 악화돼 있었다. 특히 삼성서울병원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힘들어 했다(관련 기사: 결핵·비결핵항산균 권위자였던 故고원중 교수의 ‘외로움’).

유족은 고 교수가 생전 만성 과로에 시달렸고 이로 인해 번아웃 상태에 놓이는 등 정신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의학적 소견이 담긴 심리부검 감정서와 직업환경의학과 의학감정서, 동료 의사들의 진술서 등을 받아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에 직무상 유족보상금을 청구했다.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은 지난 3월 12일 고(故) 고원중 교수 유족이 청구한 '직무상 유족보상금' 청구를 부결한다는 결정서를 유족 측에 보내왔다.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은 지난 3월 12일 고(故) 고원중 교수 유족이 청구한 '직무상 유족보상금' 청구를 부결한다는 결정서를 유족 측에 보내왔다.

유족이 청년의사에 공개한 심리부검 감정서에 따르면 고 교수는 만성적인 과로로 인한 번아웃 상태였다. 삼성서울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할 당시에는 우울장애가 있었으며 이직을 앞두고는 그 증상이 더 악화됐다. 고 교수가 사망하기 보름 전인 2019년 8월 2일 약물과용으로 의식 저하와 호흡곤란 상태로 발견됐던 일도 ‘자살시도’로 판단했다. 심리부검이란 자살자의 가족이나 지인의 진술을 토대로 사망 전 심리, 행동 변화를 재구성해 자살 원인을 찾는 방법이다.

유족은 사학연금공단에 제출한 직무상 유족보상금 청구이유서를 통해 “심리부검 감정서에 따르면 고인(고 교수)은 대학병원 의사이자 의대 교수였고 결핵, 비결핵항산균 분야 국내외 권위자로 인정받았으며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었다. 성장과정, 가족관계, 가족력, 경제적 수준과 관련한 자살 위험 요인은 없었다”며 “고인의 자해행위는 직무로 인한 주요우울장애의 심한 우울 상태에서 정상적인 사리분별력, 판단력이 상실된 상태에서 이뤄졌다”고 했다.

직업환경의학과 의학감정서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고 교수가 사망한 해인 지난 2019년 1월경에는 주 100시간 가까이 근무하는 등 업무량이 많았다. 직업환경의학과 의학감정서는 ‘고인이 수행한 업무량, 업무량 대비 인력, 고인이 이뤄낸 연구 업적 등을 고려할 때 장시간 노동을 지속적으로 해 왔을 것으로 판단된다. 당시 상당한 업무압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객관적인 업무 스케줄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했다.

또 직장 내 스트레스가 심했고 이는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며 동료 진술로도 확인된다고 했다. 직업환경의학과 의학감정서에는 ‘장기간에 걸친 과로와 신체적 고통, 회사 내 관계 갈등, 병원 지원 부족 등이 상호작용해 고인에게 우울증이 발생했다고 판단된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에 따라 유족은 “고인의 사망은 직무와 관련된 사망으로 직무상 유족보상금, 직무상 유족연금이 반드시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학연금공단 "고 교수 사망, 직무와 관련됐다고 보기 힘들다"

하지만 사학연금공단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사학연금공단은 지난 3월 14일 “직무가 직접적인 사망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보기 어렵다. 직무와 사망과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며 유족보상금 청구를 부결했다. 유족이 성균관대를 거쳐 직무상 유족보상금을 청구한 지 7개월 만이다. 유족은 성균관대에 관련 서류를 지난해 8월말 제출했으며 그해 12월 사학연금공단에 직무상 유족보상금 청구가 접수됐다. 

사학연금공단은 부결 결정서를 통해 “망인(고 교수)은 최근 5년간 정신과적 상담이나 치료를 받지 않았고 설령 우울증세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개인 성향에 의한 것인지 업무로 기인된 것인지 단정할 수 없다”며 “직무와 관련한 사유로 정상적인 인식 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됐다고 볼만한 객관적인 입증자료가 없다”고 했다.

사학연금공단은 “약물과다복용 사건을 자살시도라고 주장하나 사건 후 주변에서 정신과적 치료를 권유했는데도 적절하고 적극적인 정신과적 치료를 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했을 때 귀책 사유가 망인에게 있다고 판단된다”고도 했다.

사학연금공단은 또 “호흡기내과 관련 분야 전문가로서 남다른 애착심이나 자존감, 나아가 조직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것은 망인뿐만 아니라 일반 교수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현상”이라며 “개인적인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평균적으로 망인만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정도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허탈한 유족 "할 수 있는데까지 하겠다" 소송 제기

유족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법원의 판단을 받기로 했다. 재심을 청구하기보다 사학연금공단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기로 한 것이다.

고 교수의 부인 이윤진 씨는 “단 한 장의 부결 결정서를 받고 허탈했다. 그 부결 이유도 납득할 수 없었다”며 “직무상 유족보상금을 청구하려면 성균관대를 거쳐야 하는데 성균관대에서 일부 서류를 사학연금공단에 보내지 않아 뒤늦게 우리 측 변호인이 따로 보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누락됐던 서류는 고 교수의 경력사항과 건강상태 자료, 유족과 동료들 진술서, 사실확인서, 사실조회회신, 탄원서, 고 교수의 업무량과 업무스타일, 직장 내 갈등, 사망 당일 자료 등이다.

이 씨는 “재심을 청구해봤자 시간 낭비 같아서 사학연금공단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며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는 게 남편 삶의 철학이었다. 여기서 멈추면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는 게 아니다. 힘들고, 소송에서 질 가능성이 크다고 해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다”고 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