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훈 원장 “의사과학자 양성 위해 카이스트와 협력”
“의대 교육과정으로는 한계…특수목적 의전원 필요”

한국원자력의학원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의사과학자 양성이다. 수십년간 쌓아온 임상 연구 인프라를 기반으로 '연구하는 의사'를 키우는 기관으로 거듭 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의학전문대학원 설립을 추진하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카이스트)과 협력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카이스트가 의전원을 설립하면 원자력의학원 산하 원자력병원이 수련병원 역할을 하는 방안이다. 

지난해 12월 박종훈 원장이 부임한 이후 논의는 탄력을 받고 있다. 박 원장은 카이스트와 원자력병원이 손을 잡으면 노벨의학상에 도전할 수 있는 의사과학자를 양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원자력의학원은 지난 1962년 원자력연구소에 개설된 방사선의학연구실에서 출발했으며 2002년 독립 기관으로 출범한 이후 국내 방사선의학 연구를 주도하고 의료 현장에 구현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청년의사는 박 원장을 만나 그가 그리고 있는 '새로운 원자력의학원'에 대해 들었다. 

한국원자력의학원 박종훈 원장은 최근 청년의사와 인터뷰를 갖고 의사과학자 양성기관으로 거듭 나는 방안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사진제공: 한국원자력의학원).
한국원자력의학원 박종훈 원장은 최근 청년의사와 인터뷰를 갖고 의사과학자 양성기관으로 거듭 나는 방안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사진제공: 한국원자력의학원).

- 지난해 10월 고려대안암병원장 임기를 마치고 바로 원자력의학원장으로 부임했다. 민간병원과 공공기관 간 차이가 있는가. 

제일 큰 차이는 공공기관이 인사나 예산 등에 대한 탄력성이 제한돼 있다는 점이다. 민간병원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범위 내에선 내 소신대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원자력의학원은 공공기관이라는 특성상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예산이나 인력이 해마다 정해져서 내려온다. 그렇다 보니 기민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어렵다. 

- 원자력의학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속이기도 하다. 

보통 병원은 진료 위주지만 원자력병원은 과학기술 특성화 병원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연구 중심 진료를 한다. 원자력의학원 시초가 원자력연구소이고, 이후 병원이 생겼기 때문인데, '연구중심병원'의 원조라고 볼 수 있다.

다른 연구중심병원과도 다르다. 연구중심병원은 의사들이 임상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이를 연구한다. 하지만 원자력의학원은 병원 밖에서 연구 과제를 끌어온다. 과기부 산하 연구기관에서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원자력의학원에서 연구하고 임상에서 구현해 낸다. 

예를 들어 최근 원자력의학원에서 알파핵종이라는 방사선 동위원소를 연구하고 있는데, 굉장히 좋은 치료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방사선의학이 복잡하고 첨단화된 분야이다보니, 의사들이 아이디어를 제시하기 어렵다. 반면 원자력의학원은 과기부 출연연에서 연구하는 과학 분야 최신 아이디어를 얻어 첨단화된 치료제를 연구하고 의료계에 소개할 수 있다.

- 연구에 특화된 기관이지만 병원이 있는 한 진료 수익에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원자력병원이 있기 때문에 진료 관련 압박을 피할 수 없다. 병원 평가에서는 주로 치료한 환자 수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고가의 치료장비나 진단검사장비를 갖추고 있는 진료 중심 병원들이 더 유리할 수밖에 없다.

원자력병원은 특수목적 의료기관이다. 환자 진료로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닌 연구가 주목적이기 때문에 다른 형태의 평가가 필요하다. 정부가 후원해 진료에 대한 압박을 덜 받고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기관이 되면 좋을 것 같다.

- 의사과학자 양성에도 관심이 있으며 관련 논의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과기부 산하인 카이스트가 의전원을 설립하면 원자력병원이 수련병원 역할을 맡는 방안이다. 원자력병원은 연구 중심의 과학 특성화 병원이기 때문에 카이스트 의전원 수련병원이 되면 충분히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카이스트 입장에서도 의전원을 운영하기 위해 수련병원이 필요하다. 의사과학자도 임상 실습은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굳이 새로운 병원을 지을 필요 없이 원자력병원을 수련병원으로 활용하면 된다. 

원자력의학원도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 원자력의학원은 공공연구기관으로 수익을 창출하기 쉽지 않다. 원자력병원이 카이스트 의전원의 수련병원이 된다면 여러 투자나 지원을 받아 연구를 지향하는 목적에 부합하는 기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각자 가진 인프라를 통해 ‘윈-윈(win-win)’할 수 있다. 

- 왜 카이스트인가.

우리나라 의대 교육체계는 주로 임상 의사 양성에 맞춰져 있다. 예전에도 의전원에서 ‘의사과학자 양성과정(MD-PhD 과정)’을 통해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고자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어쩔 수 없다. 의대 교육 과정이 임상 중심이기 때문에 학생들도 졸업 후 진로를 임상 의사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카이스트는 지금도 의과학대학원을 통해 의사과학자를 양성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대다수 학생들이 석·박사 과정을 마친 후 병원으로 돌아갔다고 들었다.

때문에 학사 과정부터 의사과학자를 목표로 교육하는 특성화 기관이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 그게 카이스트 의전원이 될 수 있다. 1년에 입학생을 30~40명 정도 받고 졸업 후에도 의사과학자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의대에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지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정부는 의사과학자 양성에 나서는 의대에는 충분히 지원하고 의대도 교육 프로그램을 개편해야 한다. 졸업 후 의사과학자가 얼마나 배출됐는지에 대한 평가도 필요하다. 

- 원자력의학원 산하에는 원자력병원을 포함해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 국가RI신약센터, 방사선의학연구소가 있다. 

특히 국가RI신약센터의 경우 신약 개발을 위한 중추적인 연구기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국가RI신약센터는 제약사에서 신약을 개발할 때, 임상단계 전에 미리 약의 유효성이나 독성을 입증하는 기관이다. 기존 방식과는 달리 방사성 동위원소로 약을 검증하는데, 그 과정이 매우 정교하다. 하지만 상당한 고가의 장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일반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이런 센터를 구축하기 어렵다. 지난 2019년 문을 열었고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 신약 개발에 많은 부분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원자력은 신약 검증이나 방사선의학 등 의료 분야에 유용하게 쓰이고 있지만, 방사선의학은 아직 낯설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나 동일본 대지진으로 국민들 사이에서 원자력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을뿐더러, 방사선의학의 인지도가 낮기도 하다.

원자력은 발전과 비발전 분야로 나뉘는데, 발전은 원자력 발전소 분야고 비발전은 원자력과 관련된 방사선을 다루는 의학이다. 미국의 경우 발전과 비발전 시장 규모가 1대 1인 반면 우리나라는 8대 2 정도로 발전 부분에 치우쳐 있다.

비록 우리나라에서 방사선의학 분야 비중이 작지만, 이 분야에 종사하는 엘리트 인력들이 많기 때문에 충분히 발전 가능성이 있는 분야다. 정부 지원만 늘어나면 더 크게 성공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부분을 우리가 아무리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국민 입장에선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원자력의학원도 카이스트 의전원의 수련병원을 추진하는 등 기관 차원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국민에게 원자력의학원이 의사과학자 양성 기관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면 원자력에 대한 이미지도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 올해 안에 꼭 이뤄내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가장 중요한 목표는 원자력의학원이 과학기술 분야 의학기관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방사선의학의 방향을 설정하고 과기부 출연연들과의 협력안을 모색하는 전략센터를 구상하고 있다. 이 센터에서 과학기술 분야 의과학을 정립하기 위한 전략을 도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대정부 활동 등을 통해 카이스트 의전원 설립 필요성에 대한 여론도 형성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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