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여성 의사과학자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안명주 교수
향후 20~30년 의료계 큰 변화…젊은 의사과학자들이 변화 주도해야
의사과학자 인건비, 연구비에서 나와야 병원 눈치 안보고 연구 가능

보건복지부가 지난 2019년 '융합형 의사과학자 양성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의사과학자 양성이 본격화 된 지도 2년이 지났다.

'융합형 의사과학자 양성 프로그램’은 기초의학에 관심이 있는 인재들이 의사과학자의 길을 걷는데 보탬이 되고자 추진되는 것으로, 현장에서는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정부가 의사과학자 양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다만 의사과학자들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좀 더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최고 여성 의사과학자로 손꼽히는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안명주 교수는 최근 청년의사와 만나 의사과학자 양성을 이제 막 시작한 정부가 ‘지속성’과 ‘적극성’을 갖고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안명주 교수.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안명주 교수.

의사과학자 양성, 지속성이 가장 중요

안 교수는 정부의 의사과학자 양성 프로그램을 “아직까지 현장에 직접 와닿는 부분은 크지 않다. 다만 의사과학자를 양성하는 프로그램 자체는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안 교수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의료는 진료 위주였고 여러 임상의사들의 노력을 통해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했지만 (상대적으로) 연구분야는 뒤쳐져 있다"며 "의학 발전은 결국 기초의학을 잘 정립하고 과학을 통해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의사로서 환자를 진료하다보면 환자가 원하는 여러가지를 매일 직면학 되는데 의사과학자를 양성하면 연구를 통해 이러한 환자의 미충족 수요를 해결할 수 있다”며 “이를 발판으로 진료 외 연구에서도 우리나라가 세계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9년 시작해 이제 태동기에 불과한 의사과학자 양성사업이지만 안 교수는 가장 중요한 점으로 '지속성’을 꼽았다.

안 교수는 “의사과학자 양성이라는 것은 단기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전공의 때부터 의사과학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대학에 남아서도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줘야 한다"면서 "(의사과학자 과정을 잠깐 경험하고) 다시 평범한 진료교수로 돌아가는 것은 낭비다. 100년을 내다보는 큰 그림을 그리고 전공의, 전임의, 임상조교수 등 젊은 의사들을 10년에서 20년 정도 꾸준히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의사과학자들이 당당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돼야

의사과학자 양성도 중요하지만 배출된 의사과학자들이 진료 현장에서 당당히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우리나라는 의사 한명이 환자를 덜 진료하면 바로 병원에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다. 따라서 병원 소속의 의사가 연구를 하게 되면 병원과 동료 교수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연구자들을 힘들게 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해외에서는 연구교수가 과제를 수탁해 연구비를 받으면 연구비를 인건비로 활용할 수 있다. 연구교수가 열심히 해 연구비를 마련하면 자신의 인건비가 해결되는 구조”라며 “우리나라는 연구비를 인건비로 활용할 수 없기 때문에 (급여를 주는) 병원 입장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안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도 연구비를 인건비로 활용할 수 있게 하면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어 연구자와 연구를 맡기는 기관 모두 윈윈할 수 있다”며 “이런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나라에서 의사과학자로 살기 너무 어렵다”고 강조했다.

인력 외 인프라에도 투자 필요

이 외에도 안 교수는 아직 우리나라의 연구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안 교수는 “연구는 사람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실험실, 장비, 실험실 관련 전문인력 등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며 “몇몇 대학병원들은 이런 시스템이 잘 마련돼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 대학병원들은 열악하다. 정책적으로도 지원해 주는 것이 많이 없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연구비 규모가 너무 적고 단시간 내 성과를 바라는 것도 걸림돌”이라며 “연구는 최소한 5년은 지켜봐야 (지켜보던 연구 중) 10% 정도에서 성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연구비를 지원하면 무조건 성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결국 의사과학자가 의료 현장에서 잘 뿌리내리려면 의사과학자들이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인건비 해결책과 기본적인 연구 인프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과학자는 특별한 사람, 자부심 심어줘야

의대생들이 의사과학자를 ‘매력’적인 직업으로 인식하게 하는 방안으로는 의사과학자에 대한 자부심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안 교수는 “의대생들이 의사과학자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직업 안정성 등을 높여야 한다고 하는데 안정성 보다는 의사과학자를 왜 해야 하느냐에 대한 답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미 알려진 치료방법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창의적이고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 의사과학자는 그런 일을 하는 선택된 사람들이라는 점을 인식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안 교수는 “의사과학자야 말로 기존 것을 벗어나 새롭고 창의적인 것을 개발해 의학 발전의 토대를 제공하는 인물이라는 점을 알려 자부심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대별로 의사과학자 수 지정 현실적으로 불가능

안 교수는 또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 의과대학별로 의사과학자 임용 인원을 규정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했다.

안 교수는 “의대별로 의사과학자 수를 정해주는 것은 (의대에게) 올가미가 될 수 있다. 이미 연구시스템이 잘 갖춰진 곳은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힘들다”며 “그런 정책이 가능하도록 우선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대학과 병원 모두 진료 중심으로 운영되는 상황에서는 절대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이런 식으로는 진정한 의사과학자 양성이 어렵다. 정부와 민간의 합의가 있어야 하고 서로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면서 "연구비 지원도 늘리고 의사과학자들이 병원 내에서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 교수는 “동료 의사들이 다 밤새고 환자를 진료하는데 의사과학자들이 (일과시간에) 연구를 할 수 있겠냐”며 “그러다보니 (연구를 위해) 월화수목금금금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한계가 있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열악하다”고 꼬집었다.

지원을 전제로 의대‧의료기관 평가 지표 개발해야

안 교순는 의과대학평가나 의료기관평가에 의사과학자 비율 등 관련 지표를 포함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봤지만 평가에서 그쳐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안 교수는 “(의대평가나 의료기관평가 등에 의사과학자 비율 관련 지표를 포함시키는 것은) 좋다. 다만 평가를 위한 평가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평가 후 의사과학자를 잘 양성하는 기관에 연구비를 주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며 “지원이 없으면 의대에서 하기 어렵다. 서로 윈윈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잘하는 곳에 지원하고 그런 기관에 의사과학자가 더 늘어나고 늘어난 의사과학자들이 성과를 내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게 안 교수의 조언이다.

안 교수는 “앞으로 10~20년 안에 의료계 엄청난 변화가 올 것이다. 디지털헬스케어, 비대면 진료, 인공지능 등 굉장히 다양하고 복잡한 변화로 지금과 다른 세상이 올 것”이라며 “젊은 의사들이 의료와 접목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기술 개발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한 사람의 의사과학자를 키우는 것은 커다란 노력과 힘이 필요하다. 단기적인 지원이 아닌 길게는 100년을 바라보는 대계를 세워야 한다”며 “정부에서도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한 만큼 의사과학자들이 우리나라 미래 의학 발전에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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