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즘 기반한 미래의학’ 지향…교육 패러다임 제시한 최연호 학장
“코로나19 백번 와도 문화로 뿌리 내린 의학교육 흔들리지 않을 것”

4차 산업혁명이 교육환경에도 변화를 그리고 있다.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과학기술을 접목시킨 새로운 교육환경이 구축되면서 교육혁신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 같은 교육환경의 변화는 학생들에게도 새롭게 갖춰야 할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기술을 활용하고, 방대한 정보를 파악해 핵심을 읽어낼 수 있는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의 중요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의학교육도 마찬가지다. 의학 분야에 빠르게 도입되는 최첨단 기술을 이해하고, 방대한 환자 정보를 꿰뚫어 봐야 하는 미래 의사 양성을 위한 의학교육에도 변화가 시작됐다. 올해 초 ‘데이터융합미래의학교실(미래의학교실)’ 문을 연 성균관의대도 변화의 바람을 타고 교육혁신을 선도하고 있다.

성균관의대는 지난 2년여 동안 기존 의대 교수와 학생들을 매칭해 연구하던 커리큘럼의 골격을 갖추고 체계화시켜 미래의학교실로 확장했다. 의과대학 학생들은 이곳에서 파이썬을 접하고 코딩을 배우는 등 기본적인 연구방법을 체계적으로 습득하면서 실제 해외 유명 SCI 저널에 연구논문을 발표하는 성과도 거두고 있다.

성균관의대가 의학교육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인성’이다. 이에 성균관의대는 지난 2018년 ‘인성기반 절대평가제’를 의대 최초로 도입했다. 의대 선발 과정에도 ‘인성 검증’을 위한 장치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참여하는 ‘다중 미니면접(Multiple Mini Interview)’을 시행하고 있다. 성균관대의 교시인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의학으로 구현하고자 한 성균관의대 최연호 학장의 포부를 담아낸 것이기도 하다.

이에 더해 최근 성균관의대는 ‘통찰의학’을 통해 의학교육의 새로운 혁신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통찰의학은 단순한 의학적 지식이 아닌 환자가 갖고 있는 ‘맥락’을 이해해 풀어내는 의학적 지혜를 의미한다. 진단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합쳐 ‘맥락’을 찾는 것인데, 이 맥락을 길러내는 힘이 바로 통찰력이라는 것이다. 최 학장은 미래 의학교육에서 ‘통찰지능(Insight quotient)’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통찰지능은 최 학장이 제시한 새로운 개념으로 ‘IQ(Intelligence quotient)+EQ(Emotional quotient)〈InQ(Insight quotient)’이라는 새로운 공식도 제시했다. 예리한 관찰력(IQ)으로 사물을 꿰뚫어 보는 능력(EQ)인 통찰(InQ)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 학장은 “휴머니즘 없이 기술만 발전한다면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 그 피해는 환자에게 돌아간다. 그러지 않도록 미래의학의 중심에 균형 잡힌 휴머니즘이 바탕이 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통찰의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통찰의학이 성균관의대의 문화로 뿌리내림 할 수 있도록 씨앗을 뿌린 최 학장을 만나 미래의 의학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의학교육에 ‘통찰의학’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그 배경이 궁금하다.

1800년대 후반 유럽 사람들이 호주에 갔다. 백조는 그 때까지 하얀색이었다. 그런데 까만 백조를 본 거다. 우리가 백조라고 믿었던 게 (백조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거다. 단 한 번에 바뀌는 현상 하나로 그간 가졌던 고정관념이 확 없어졌다. 희귀한 일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생각이 또 달라진다. 역사도 그렇게 변하는 것 같다. 그런데 사람은 현상만 본다. 그 뒤에 숨어있는 본질을 보기 어렵다. 의사도 현상만 보면 안 된다. 의학지식만 갖고 환자를 보면 사고는 항상 거기에서 일어난다. 통찰의학이 중요한 이유다.

- 임상에서 환자를 진찰하는데 의학지식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의미인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

돌이 된 유아가 진찰을 받으러 왔다. 이유를 들어보니 태어나서부터 잘 안 먹던 아이인데, 잘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부모가 분유도 열 몇 번을 바꿔가며 먹였다고 한다. 소위 ‘입이 짧은 아이’였던 건데 잘 안 먹는 아이에게 억지로 먹이니 구토가 났던 것을 걱정이 든 부모가 병원을 찾았다. 아이가 잘 먹질 않고 구토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병원은 현상만 보고 내시경을 했고, 조직검사도 한 거다. 그 결과 ‘호산구성위장관염’을 진단 받았다. 치료로 스테로이드와 강력한 제산제가 처방됐지만 효과는 없었다. 먹기 싫어서 안 먹었던 아이인데 의사와 부모는 그걸 몰랐던 거다. 중요한 것은 그 의사와 부모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지식으로만 접근해 아이의 마음을 읽지 못한 거다. 그렇게 돌고 돌다 우리 병원까지 왔는데 듣는 순간 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처방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먹게 두고 야간 수유를 권했다. 한 달 후 만났는데 살이 찌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케이스가 아주 흔하다. 그 과정이 바로 ‘통찰’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라는 의미다.

- 새로운 공식을 직접 만들었다. ‘IQ(지능지수)+EQ(감성지수)〈InQ(통찰지수)’가 그것인데. 이 공식이 갖고 있는 의미에 대해 설명 부탁드린다.

통찰의 정의는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다. 예리한 관찰력은 ‘IQ’의 항목이고, 사물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EQ’다. 이 둘을 합친 게 바로 통찰이다. 현상만 바라보고 현상들을 잇지 못하면 맥락을 놓칠 수밖에 없다. 맥락을 잇는 게 진단이고 그곳에서부터 좋은 치료를 만들어 내는 게 통찰이다. 그런데 이 통찰력은 졸업 후 10년 정도가 지나면 갖춰진다고 한다. 의대생들이 이런 과정을 미리 배워나가면 인성과 통찰을 기반으로 정말 환자의 편에 서서, 환자를 위한 의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미래의학과 더불어 통찰의학을 강조한 이유가 있나.

4차 산업혁명으로 의대뿐만 아니라 모든 대학에서 AI, 사물인터넷, 로봇공학, 가상현실 등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DX)을 준비하고 있다. 이 같은 기술적인 발전이 바퀴의 한 축이 돼야 한다. 또 다른 한 축은 휴머니즘이다. 인성기반의 절대평가와 통찰의학이 들어가지 않으면 한 쪽만 발전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올바른 진단이 되면 필요하지 않은 검사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결국 손해는 환자가 보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의대에서 의학만 가르칠 게 아니라 심리학, 경제학, 철학, 논리 등 모든 것을 처음부터 엮어서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론에 너무 파묻히니 뒤에 놓여 있는 맥락을 빨리 캐치하는 능력을 가르치기 어려워서 그렇다.

- 다양한 영역의 지식을 의학과 어떻게 결합시켜 교육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행동경제학 용어 중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이 있다. 이는 내가 자주 본 것, 내 가까이에 있어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 최근 가장 인상 깊게 경험한 것 등을 기준으로 찍어내는 행동을 의미한다. 이 기억이 나를 지배한다. 비행기 사고가 나서 300명이 사망했다고 가정해 보자. 제주도로 여행 가려고 비행기를 예약했던 사람들이 취소하는 사례가 늘어난다. 부산으로 목적지를 바꿔 자동차를 몰고 간다. 자동차와 비행기 사고율 중 어느 게 높나. 비행기 사고율이 높지만 우리는 어리석게도 비행기는 타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택하는 게 가용성 휴리스틱이다. 환자들도 마찬가지다. 최근 경험에 따라 자기의 병과 증상을 연결시킨다. 인터넷에 정보가 많아서 벌어진 일 같기도 하다. 그 정보를 보고 환자가 스스로 진단을 해 와서 나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 환자의 마음은 어떻겠나. 이 때 환자의 마음을 읽으라는 거다.

또 과거 체코슬로바키아 축구 국가대표 미드필더였던 인토닌 파넨카라는 선수가 잘 차는 ‘파넨카킥’이 있다. 골키퍼들은 선수가 차는 방향을 보고 막기 위해 뛰면 늦는다. 그러니 미리 뛴다. 보통 왼쪽이나 오른쪽인데, 파넨카는 골키퍼의 심리를 알고 공을 띄워 골대의 가운데를 향해 찬다. 그러면 무조건 성공한다. 골키퍼는 이미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넘어졌기 때문에 가운데로 올라가는 공을 잡을 수가 없는 거다. 그렇다고 골키퍼가 가만히 서있을 수는 없지 않나. 욕먹는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의사가 약을 안 주고, 검사도 안 하면 ‘저 의사 뭘 했지’가 되는 게 세상의 관념 같은 거다. 이 같은 ‘행동편향’을 의대생들에게 알려준다. 의사들이 약을 쓰는 이유는 ‘손실기피’ 심리로 설명한다. 인간은 같은 돈이어도 불구하고 이득보다 손해에 예민해진다. 이득을 보려할 때는 안전하게 보려 해도 손해가 난다고 하면 그걸 크게 느껴 피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감기로 병원을 찾은 아이에게 항생제를 쓸 이유가 없어도 아이와 함께 놀았던 옆집 아이가 폐렴이라는 아이 부모의 걱정 때문에 혹시 모를 손실을 기피하기 위해 항생제 처방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런데 이상하다. 부모와 의사는 만족했지만 그 약은 아이가 먹게 된다. 그 피해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입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사례를 통해 의료를 볼 수 있다.

- 통찰의학을 가르치는 특별한 수업시간이 있다고 들었다. ‘휴머니스틱 페디아트릭스(humanistic pediatrics)’인데, 어떤 수업인지 소개해 달라.

의료인문학과 임상을 융합시킨 수업으로, 직접 맡고 있다. 월요일 오후 외래 진료 4시간 동안 의대생 2명이 참관한다. 실제 환자를 두고 진단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그 때 마다 케이스가 모두 다르니 순간순간마다 상황을 설명해 주고 맥락을 이어준다. 4시간 동안 서서 졸든지, 관찰하든지, 다른 걸 하는데 이 수업시간에는 환자 1명이 진료가 끝나서 나가면 그 때부터 이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토론이 벌어진다. 전체 진료가 3시간에 끝 날 게 5시간씩 걸리기도 한다. 그래도 학생들이 ‘아!’하고 느껴야 한다. 그게 통찰이지 않나. 지식을 외우는 것보다 이런 이야기 하나 들어두면 더 많이 기억에 남을 거라고 생각한다.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의학교육 환경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다. 코로나19 이후 의학교육의 변화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의학계에서도 ‘코로나19 이후 의학교육은 어떻게 변해야 하나’를 주제로 논의한 적 있다. 그 때 던진 화두가 ‘환경이 변할 때마다 의학교육이 바뀌어야 하느냐’였다. 코로나19가 ‘블랙스완’이지 않나. 우리가 당해보지 못한 희귀한 일을 경험한 거다. 거꾸로 코로나19 이전에는 우리가 무엇을 생각했었는지 고려해 봐야 한다. 코로나19가 오든, 안 오든 할 수 있는 의학교육이 진정한 의학교육이라고 이야기 했다. 바로 인간 중심의 의학, 통찰의학을 이야기했다. 코로나19든 아니든 미래의학은 발전할 것이고, 방법론이 변하다 뿐이니 본질은 변하면 안 된다. AI가 아닌 휴먼에, 즉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휴머니즘을 바탕에 두지 않고 시스템만 발전해 나가면 그 피해는 환자에게 돌아간다. 균형 잡힌 휴머니즘이 기반 된 미래의학이 올바른 방향이 될 것 같다.

- 의학교육의 두 축으로 미래의학과 통찰의학을 강조했다. 앞으로 포부나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

성균관의대의 ‘문화’를 만드는 거다. “성균관의대 나오면 뽑아야 돼. 이 사람은 교수감이야”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덕목을 갖춘 인재를 만드는 게 꿈이다. 즉 인성이 좋아야 한다. 조별 과제에서 ‘무임승차’ 하는 학생들이나, 출석하고 도망가는 ‘출튀’ 학생들은 점수를 깎아 ‘공정성’을 강조한다. 이제 학생들이 무서워한다. 그렇게 평가가 달라지니 학생들도 바뀌었다. 지금 씨앗을 뿌린다는 게 중요하다. 아이콘이 될 만한 성균관의대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중요할 것 같다. 코로나19가 100번 와도 문화로 뿌리 내리면 변하지 않을 거다. 지금처럼 흔들리지 않게 교육하면 된다. 10년 후, 2030년 쯤 가시적 성과가 나올 거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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