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병에 이어 종합병원 추가 병상 확보 행정명령
여유 병상 부족한 대학병원들, 과별 ‘병상지키기’ 전쟁 중
“정부가 인력 시장 왜곡시켜 의료인 확보도 어려워져”
“서킷 브레이커 어렵다면 일부 방역 수칙이라도 강화해야”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으로 늘어난 위중증 환자와 함께 시작한 의료 현장에서는 의료체계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마저 들린다.

연일 역대 최다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중증 환자를 진료할 의료 인력도 부족하고 병상 확보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코로나19 환자 진료에 의료자원이 집중되면서 非코로나19 환자 진료에도 구멍이 생기고 있다고 우려했다.

코로나19 위중증 환자는 3일째 역대 최다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12일 0시 기준 위중증 환자는 475명으로 국내 코로나19 발생 이후 가장 많은 수치로 집계됐다. 지난 6일 411명으로 두달여 만에 400대를 돌파한 이후 405명→409명→425명→460명→473명→475명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 5일 수도권 소재 상급종합병원 등에 병상 확보 행정명령을 내린 데 이어 12일에는 ‘수도권 확진자 증가에 따른 긴급의료대응계획’을 발표하고 수도권 700병상 이상 종합병원 7곳을 대상으로 허가 병상의 1%를 준중증병상으로 확보하라는 행정명령을 시행했다.

일주일 동안 두 번의 행정명령을 받은 의료 현장은 소리 없는 전쟁 중이다.

단기간에 병실을 지을 수 없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치료병상을 확보하려면 기존 병실을 비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병상 가동률이 높은 대학병원들은 기존에도 여유 병상이 많지 않았던 상황이다. 이에 진료과마다 ‘병상 지키기’ 전쟁을 치르고 있다. 코로나19 환자에게 병상을 내주면 다른 환자가 입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A대학병원 교수는 “병동마다 코로나19 치료병상으로 내줄 여유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코로나19와 관련 있는 진료과는 병상을 지키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있다”며 “병상을 코로나19 환자에게 내주는 진료과는 그만큼 다른 환자를 입원시키지 못하는 상황이기에 병원장 마음대로 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환자용으로 병상을 비운 진료과에서는 다른 환자를 입원시키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도 했다.

병상 확보도 쉽지 않지만 의료 인력 부족 문제는 더 심각하다. 행정명령으로 코로나19 치료병상을 더 확보해야 하는 병원들 내에서는 사직하겠다는 의료인이 늘고 있다.

가천대길병원 기획조정실장 겸 감염관리실장인 엄중식 교수(감염내과)는 “환자를 진료하느라 괴로운 게 아니다. 병상과 인력 확보 문제를 해결해야 해서 괴롭다”며 “행정명령으로 병상을 확보하고 환자를 보라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환자를 진료할 의료인력이 없다”고 말했다.

엄 교수는 “격리병동 간호사들 중에는 행정명령 발동 소식에 사직하겠다는 사람들도 많다. 사직하고 생활치료센터 등 경증 환자를 보는 곳에서 파트 타임으로 근무해도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며 “정부가 인력 시장도 왜곡해 놨다”고 지적했다.

엄 교수는 “병원마다 상황이 다른데 ‘코로나19 치료병상으로 얼마를 더 확보할 수 있느냐’고 하는 게 아니라 일률적으로 몇 퍼센트(%)를 내놓으라고 한다”며 “병원 상황에 맞는 지원이 필요한데 그런 것은 없이 상급종합병원 지정 평가에 반영하겠다고만 한다. 사실상 협박”이라고 비판했다.

엄 교수는 이어 “현장은 엉망진창인데 정부는 행정명령을 내린 후 할 일 다 했다는 식”이라며 “기존에도 코로나19 중환자 병상 10~20% 정도는 인력이 없어서 운영하지 못하는 병원이 많았다. 병상 가동률만 보고 여유가 있다고 할지 모르지만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고도 했다.

그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전문 의료인력을 보강하고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꾸준히 지적했지만 지금까지 하지 않다가 내놓은 대책이 행정명령”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의료체계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방역 조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방역 조치를 일순간 강화하고 위드 코로나를 잠시 멈추는 ‘서킷 브레이커’(비상계획)를 발동하기 어렵다면 일부 방역 수칙이라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는 “정부는 서킷 브레이커 발동을 정책 실패로 봐서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 당초 예상보다 상황이 더 빨리 악화되고 있다”며 “백신 접종자를 최대한 더 늘리고 서킷 브레이커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부 방역 수치를 강화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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