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의학, 수십년간 제자리걸음…임상 교수, 기초 교수의 10배나 증가

▲ 2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기초의학의 당면문제와 기초의학자 양성을 위한 방안' 심포지엄에 참여한 전국 기초의학교실에 근무하고 있는 의사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심포지엄 강연을 듣고 있다. 김형진 기자

환자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우리나라 의사들의 기초체력이 흔들리고 있다. 의학의 기초체력이라 할 수 있는 기초의학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해부학을 비롯해 생리학, 생화학, 약리학, 미생물학, 기생충학 등 의학지식의 주춧돌을 담당하는 기초의학이 위기를 맞았다.

의학적인 지식 기반의 완성을 위해서는 기초의학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작 기초의 길을 선택하는 의학자수는 점점 줄고 있다. 지난 2000년 이후 10년 간 늘어난 기초의학 교수 수는 같은 기간 동안 증가한 임상의학 교수 수의 1/10밖에 되지 않는 것도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기초의학 교수들 사이에서는 기초의학 교육 과정에 대한 새로운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에 기초의학 교육에 몸담고 있는 교수들이 한 자리에 모여 기초의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 모색에 머리를 맞댔다. 지난달 27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의학엑스포 2014’에서 열린 ‘미래의학을 위한 기초의학 육성방안 심포지엄’이 바로 그것이다. 이날 심포지엄에 참석한 기초의학 교수들은 한목소리로 기초의학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기초의학 위기 얼마나 심각한가

심포지엄에서 ‘기초의학 발전과 기초의학자 양성방안’을 주제로 발제를 맡은 대한의학회 이혜연 기초의학이사(연세의대 해부학교실)는 기초의학과 임상의학 교수 수 비교를 통해 기초의학 위기론을 뒷받침했다.

지난 200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간 의대 교수 현황을 살펴보면 기초의학 교수는 1,270명에서 1,501명으로 231명이 증가한 반면 임상의학 교수는 6,102명에서 8,741명으로 2,639명이나 늘어났다. 지난 10년간 늘어난 교수 숫자만도 10배 이상 차이를 보였다.

전국 40개 의대 규모별 기초교수 수와 임상 교수 수를 비교한 결과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40개 의대를 ▲101~200명 ▲201~300명 ▲301~400명 ▲401~500명 ▲501~600명 ▲601~950명의 6개군으로 나눠 기초교수 수와 임상교수 수를 비교한 조사에서도 임상교수는 평균 218.5명인 반면 기초교수는 37.5명으로 임상교수의 17.3%에 불과했다.

점점 줄고 있는 기초의학 수뿐만 아니라 기초의학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수들의 평균 연령 또한 기초의학의 위기를 실감케 하고 있다. 의과대학 교수 정년을 65세 기준으로 했을 때 현재 55세 이상인 기초의학 교수는 164명이었으며, 45세 이하는 61명으로 조사됐다.

이 이사는 “이는 기초의학이 맞은 심각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며 “10년 후 기초의학에 대한 계획이 있는지 궁금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기초의학 교수의 적정수에 대해 생각해 봤나”라고 되물으며 “기초의학을 포기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지금부터라도 기초의학 교수의 역할이 뭔지, 임상교수들의 연구를 뒷받침할 제도적 방안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초의학, 의사들의 기초체력

교수들이 기초의학 살리기에 적극 나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기초의학은 의사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밑거름이 되는 ‘기초체력’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초체력은 의사 스스로 평생 무기를 만드는 일이지만 최근 임상의학만 강조되는 풍토로 인해 의학자가 아닌 의료 기술자 양성에 가까운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초의학협의회 채종일 회장(서울의대 기생충학교실)은 “의학연구에서 기초의학은 의학의 학술적인 부분을 뒷받침하고 질병의 원인, 방어기전, 역할 등을 다뤄 의학발전에 기여한다”며 “생명과학 연구와 임상의학 연구의 중개자 역할을 할 수 있다. 또 질병 진단 및 치료에 대한 EBM(Evidence based medicine, 근거중심의학)을 정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채 회장은 “하지만 기초의학 수업이 축소되는 것은 물론 기초의학 교수 충원도 축소되고 있다”면서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경우) 기초의학 역량이 국제적인 기준에 미치지 못해 부실한 의사를 배출하지 않을까, 또 의학이나 의료서비스의 국제경쟁력이 저하되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고 했다.

위기 극복? ‘제도 뒷받침’ 필요

그렇다면 기초의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기초의학 수련과정의 표준화 인증과 인정의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기초의학을 ‘선택’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채종일 회장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의대생들은 기초의학을 기피하는 이유에 대해 ▲수련과정 모호 ▲수련 마친 후 진로 불확실 ▲평생 공부만 해야 한다는 압박감 ▲경제적인 불안감 등을 꼽았다.

채 회장은 “기초의학을 지원하면 경제적으로 걱정이 없을지 우려한다. 수련 후 갈 곳이 마땅하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평생 공부만 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상당하지만 평생 연구하고 논문을 써야 하는데도 생명과학이나 임상의학에 비해 전망은 별로 밝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이사도 “기초의학 과정의 학습 수준을 평가하는 방법도 없고 의사 국시에서 10문제만 나오면 그걸로 그만”이라며 “이게 바로 기초의학의 현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학회별 교육위원회 표준화된 수련과정 제시 ▲기초의학협의회 수련과정 감독과 인증 공동 관리 ▲기초의학 수련과정의 법률적 보장 및 제도화 등을 담은 기초의학전공 인정의 제도 도입을 주장했다. 더불어 병역특례요원제도로 근무지를 확대하는 등 군복무제도 개선도 제안했다.

이 이사는 “이렇게 해서는 기초의학자로서 고유한 역할을 할 수 없다. 대학끼리 연합체를 만들어 후학들에 대한 트레이닝을 어떻게 시킬 것인지 프로그램을 구축해야 수련과정에서 학문적 영역을 확장하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초의학 전공의를 기초의학교실 내 공중보건의사로 군복무를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료계의 합의도 필요하다고 본다”며 “약 60% 정도만 무의촌에서 근무하는 공보의 공급초과로 의사도 군복무기간 축소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렇듯 다양한 수련 방식도 고려해 봐야 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초의학자 양성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가령 ‘BK21’이나 ‘MRC’보다 획기적인 국가 지원이 절실하다. 기초의학자 양성은 국가 경제 수준 향상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의과학자 양성에 약간만 투자했어도 지금과 같은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며 “미래창조과학부는 기초의학자 육성 장학제도, 해외연수 지원제도, 박사 후 연구원 지원제도, 육성 수련기관 지원 제도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초의학 인재 육성을 위한 장학제도, 해외 연수 등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재원마련과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미래 의료계가 살 수 있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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