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야 산다① 서울의료원 시민공감서비스디자인센터

혼돈의 병신년(丙申年)이 지고 정유년(丁酉年) 새해를 맞았지만 대내외적인 상황은 여전히 녹록치 않다. 많은 기업들이 새해를 맞으면서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며 변화와 혁신을 강조했다. 이는 의료계도 마찬가지다. 청년의사는 새로운 시도로 변화를 추구하는 사례들을 찾아 그들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사진 제공 : 서울의료원

산부인과, 피부과, 성형외과, 정신건강의학과 등이 있는 서울의료원 2층 한쪽에 낯선 공간이 있다. 공공의료기관 최초로 서비스디자인 개념을 도입한 ‘시민공감서비스디자인센터(HUDC, Human Understanding Design Center)’다. 센터 한쪽 벽면 등에는 서울의료원을 상징하는 주황색이 시선을 끌지만 과하지 않다. 아직은 생소한 서비스디자인을 의료 현장 곳곳에 잘 녹여 내고 있는 센터처럼. 

위기를 기회로 바꾸다

서울의료원 시민공감서비스디자인센터는 정식으로 문을 열기도 전에 위기에 빠졌다. 지난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 사태로 전국이 혼란에 빠지면서 시와 병원의 모든 역량이 그곳에 집중됐다. 6월로 예정됐던 센터 개소식은 9월로 연기됐다.

서울의료원 시민공감서비스디자인센터가 개발한 '감염병 위기대응 커뮤니케이션 가이드'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였다. 메르스가 지나가기를 기다리지 않고 그 안에서 할 일을 찾아냈다. 피부과 전문의인 김현정 센터장과 서비스디자이너인 팽한솔 팀장, 보건기획담당 박성원 간호사, 디자인기획 담당 구슬지 디자이너는 머리를 맞대고 메르스 대응 매뉴얼을 만들기로 했다. 질병관리본부에서 나눠준 매뉴얼이 있었지만 실용적이지 못했다.  

메르스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출입구 절반 이상을 폐쇄하고 방문하는 사람들의 체온을 재고 문진을 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했다. 처음 겪어 본 상황에 환자도, 의료진도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서울의료원은 시민공감서비스디자인센터와 함께 즉각대응팀을 조직해 현장에서 필요한 매뉴얼을 서비스디자인 관점에서 만들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겪은 시행착오까지 반영했다. 

“환자들은 왜 병원에 와서 소리를 지르는지, 왜 열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고 도망가는지, 입구 통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혼란스러웠던 상황들을 정리해 매뉴얼로 하나씩 만들었다. 시기별로 노출시켜야 하는 포스터도 달랐다. 환자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김현정 센터장)

매뉴얼이 나오면 바로 현장에 적용하고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수정했다. 센터 측은 이 모든 과정을 ‘롤리팝(Lollipop) 프로세스’라고 이름 붙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매뉴얼은 메르스 종식 이후 ‘감염병 위기 대응 커뮤니케이션 매뉴얼’로 재탄생했다. 단계별 대응 매뉴얼을 전지만한 종이에 정리해 사용할 수 있도록 주황색 박스 안에 담았다. 꺼내보지 않는 매뉴얼이 아닌,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자는 게 센터의 목표였고 첫 번째 공식 사업이었다. 

김 센터장은 “아직 완성본은 아니지만 이 키트로 모의훈련도 했었다. 온라인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며 “우선 서울시 산하 13개 의료기관에 먼저 배포하고 피드백을 달라고 했다. 감염내과 쪽과도 꾸준히 의논하면서 내용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고 말했다. 

병문안 문화 개선 관련 포스터(사진 제공 : 서울의료원)

위트 있는 병문안 자제 포스터

매뉴얼 개발이 끝이 아니다. 서울의료원은 메르스 이후 감염으로부터 병원은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 병동 출입 관리 및 면회객실 구축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그 과정에 서비스디자인이 접목돼 있다. RFID 태그를 발급 받은 사람만 병동을 출입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면회객실을 별도로 설치하고 있다. 

감염 관리를 위해 병동 출입을 제한한다는 사실을 환자나 보호자, 병문안을 온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에도 신경을 썼다. 센터는 환자들의 생각을 듣고 이를 포스터에 위트 있게 담아냈다. 다인실에 병문안을 온 친구들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너무 크게 떠든다든지, 방문객이 가져온 컵케이크 하나를 한 병실에 있는 환자들이 쳐다보고 있는 모습 등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이 모든 내용을 ‘주황색’ 가이드북(환자안심병원 2.0_감염으로부터 안전한 공공병원 서비스디자인 가이드)에 담았다. 

팽한솔 팀장은 “포스터만 보면 가벼운 아이디어 같지만 그 기반에는 사용자 인터뷰 등이 다 들어가 있다”며 “병동 출입 관리 및 면회객실 구축 관련 가이드도 누구나 갖고 싶고 열어보고 싶게끔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환자와 보호자, 면회객을 어떻게 구분해서 관리할 것인지 등을 그림으로 표현해 읽고 싶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10월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2016 대한민국 의료산업 박람회(K-Hospital Fair 2016)’에 참가한 서울의료원이 부스에 붙여 놓은 가이드북을 몰래 가져갈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고. 

메이커톤과 장례식, 그리고 서비스디자인

센터의 행보는 의료원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환자는 물론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지난해 5월 개최한 ‘서울시립병원이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삽니다(MAKE-A-THON for Healthcare Innovation)’란 행사다. 메이킹(Making)과 마라톤(Marathon)을 합성한 신조어인 메이커톤은 일정 시간 동안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기획하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메이커톤 참가자 모집 공고에 300여명이 지원했고 이들 중 70명을 선발해 행사를 진행했다. 센터 측은 감염내과, 외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병동 간호사 등을 전문가 자문단으로 참여시켜 참가자들이 아이디어에 대한 자문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 행사를 통해 ▲환자 스스로 안전하게 지지해 걷고 꾸준한 운동을 돕는 스마트 플랜(구조) ▲소아환자를 위한 진료용 VR 콘텐츠와 수액공급 인형(아프지망고) ▲불편한 다인실에서도 개인 공간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스마트 커튼(UniGen) ▲손 세성을 해야 열리는 병동 출입 자동문(쓰리팝) ▲환자의 건강한 숙면을 돕고 코골이를 방지하는 스마트 베개(Haxmax) 등 5개 팀의 아이디어가 선정됐다. 

김 센터장은 “디지털 헬스케어에 관심을 갖고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이 의사들을 만나기 어렵다는 점이라고 하더라”며 “피부과 전문의로 임상을 하고 있기에 동료 의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자문을 받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메이커톤에서 나온 아이디어들은 큰 병원보다 오히려 공공의료기관에 더 많이 필요하고 빨리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고도 했다. 

지난해 9월 열린 새로운 장례문화 조성을 위한 시민참여 워크숍(사진 제공 : 서울의료원)

장례문화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장례식장은 저수가 구조에서 병원들이 수익을 낼 수 있는 부대사업 중 하나로 여겨진다. 하지만 센터의 관심 대상은 ‘수익’이 아닌 ‘문화’다.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장례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팽한솔 팀장은 “병원은 삶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죽음은 기피하는 단어다. 하지만 장례식은 80% 이상이 병원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허례허식도 많고 그 형태도 천편일률적”이라며 “그래서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 서비스디자인을 접목해 장례문화를 개선하는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공공의료기관이니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다. 팽 팀장은 “장례식장을 리모델링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런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걸 깨달았다”며 “성과를 내기 위해 서두를 문제는 아니다. 사람들을 교육시키고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 본인의 장례식을 직접 준비해보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적용해보려고 한다”고 했다. 

서비스디자인으로 혁신을 추구한 병원들은 기존에도 있었다. 삼성서울병원(2012년), 세브란스병원(2013년), 서울아산병원(2013년) 등 주로 대형병원들이었다. 이들에 비해 서울의료원 시민공감서비스디자인센터는 후발주자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본다면 후발주자라고 보기 힘들 만큼 지난 1년여 동안 많은 일들을 해냈다. 특히 서비스디자인으로 공공의료기관의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시도는 신선해 보이기까지 하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삼성서울병원과 보라매병원, 서울의료원에서 응급실에 적용한 서비스디자인을 가이드북으로 제작해 서울시 산하 공공의료기관들에 배포했다. 서울시동부병원은 응급실 리모델링을 이 가이드북을 토대로 진행하기도 했다. 

김현정 센터장은 “서울의료원은 시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복지를 하는 곳이 아니라 의료를 하는 기관”이라며 “공공의료기관이 할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 내고 보편화된 의료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라고 강조했다. 김 센터장은 “그동안은 센터의 존재를 알리는 일을 해 왔다면 올해는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기존에 해왔던 사업들을 깊이 있게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서울의료원 시민공감서비스디자인센터 구성원들. 왼쪽부터 박성원 간호사, 김현정 센터장, 팽한솔 팀장, 구슬지 디자이너(사진 제공 서울의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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