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세면 시설조차 없어…“양치질 잘 못해 치아건강 문제도 심각”
전문가들 “쪽방촌도 질병 예방 가능한 환경 만들어야"

“못 걸어요. 하루 종일 누웠다, 앉았다, 누웠다, 앉았다….”

영등포 쪽방촌에 살고 있는 옥미자(가명, 72) 할머니는 고관절이 내려앉아 스스로 일어서기 힘들다. 옥 씨가 일상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옥 씨는 가족과도 연락이 끊긴 상태.

“쪽방촌 앞 교회에서 그나마 많이 도와줘. 아침에는 쪽방상담소에서 보내준 도우미가 밥 차리고 설거지까지 해주고 가고, 오후에는 교회 사람들이 들여다봐줘.”

옥 할머니는 치아상태도 건강하지 않다. 치아 전체가 흔들려 물렁물렁한 음식이나 죽으로 끼니를 때워야 한다.

옥 할머니는 “노인들이 다 그렇지, 뭐”하며 흔들리는 치아들을 보여줬다.

영등포와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쪽방촌으로 알려져 있는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의 건강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동자동 쪽방촌에 있는 한 건물의 내부 모습

동자동 쪽방촌에 거주하고 있는 김성복(가명, 66) 할아버지는 얼마전 넘어지면서 왼쪽 손목 뼈가 부러져 수술을 받아야 했다. 병원 사회지원팀의 도움이 없었다면 수술은 꿈도 꿀 수 없었다고. 한달 방세가 고작 17만 원인 김 씨에게 185만원이라는 수술비는 감당할 수 없는 큰 돈이었다.

하지만 병원 사회지원팀이 너무 고마웠던 김 씨는 없는 형편이었지만 얼마라도 부담 하고 싶다는 마음에 자발적으로 10만원을 내겠다고 했다.

김 씨처럼 쪽방촌에는 구조상 비좁은 공간에 계단들도 많아 넘어져 다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또한 쪽방촌에는 노인이 많이 살고 있기 때문에 넘어지게 되면 크게 다치기 십상이다.  

쪽방촌 주민 건강대책, 치료에서 예방 중심으로 변화 필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10~20년전 보다 공공의료의 혜택이 좋아진 것이다. 쪽방촌 주민들 대부분은 의료급여 1종, 혹은 2종 대상자들이다. 의료급여 1종이나 2종 대상자로 선정되면 적어도 85% 이상의 진료비를 국가로부터 보장받을 수 있다. 공공병원이나 긴급의료제도를 이용할 경우에는 큰 수술도 받을 수 있다. 웬만한 상급종합병원에는 사회지원팀들이 있어 무료 혹은 저비용으로 수술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쪽방촌 관계자들은 질병을 치료하는 것만으로는 쪽방촌 주민들의 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질병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쪽방촌 주민들이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동자동사랑방 복약담당 김 모씨는 “정부와 민간단체가 의료지원을 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질병이 걸리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질병을 예방하기란 쪽방촌 주민들에게 쉽지 않다.

영등포 쪽방상담소 김형옥 소장은 “쪽방은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라며 “세면시설이 거의 없거나 이용하기 불편한 구조로 돼 있다 보니 위생관리가 잘 되지 않아 주민들의 건강이 자연스럽게 나빠진다. 양치질도 잘 못해 대부분의 주민들이 치아가 좋지 않다”고 했다. 대개 쪽방촌의 경우 10가구가 1개의 세면시설을 공동으로 이용하고 있다.

김 소장은 “주거환경 개선사업 등으로 내부 환경을 개선해 나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많이 열악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주민들의 나쁜 생활습관도 질병을 예방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주민들 중에는 술에 의존해 생활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로 인해 간 경화, 당뇨, 고혈압 등과 같은 합병증이 많이 발생한다. 문제는 알코올리즘으로 인한 합병증을 앓는 이들 중에는 병원을 가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동자동사랑방 조두선 공동대표는 “쪽방촌 주민들 중에는 병원 생활을 답답해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 술을 먹는 사람들은 입원을 하면 술을 먹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쪽방촌 주민들 중에는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고 버티다가, 결국 쓰러져 119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던 이들이 있다. 하지만 뒤늦게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질병이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된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쪽방촌 주민들이 술에 의존하지 않도록 삶에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받는 주민들에게 자활 동기 부여를 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쪽방촌 주민들 대부분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데, 소일거리라도 해 소득을 얻을 경우 수급비가 깎이기 때문이다.

쪽방촌 주민들의 자활 동기부여 중요

영등포 쪽방상담소 김형옥 소장은 “현재 민간단체 자활 작업장을 통해 주민들이 버는 소득은 10만원 정도”라며 “그러한 돈을 공제로 잡지 않고. 생활비로 쓸 수 있게 해 준다면 주민들이 보람을 느끼고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부가 쪽방촌 주민들의 건강 문제를 보다 심도 있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동자동사랑방 복약담당 김 모 씨는 “쪽방촌 주민들의 질병은 여러 생활양식에서 파생돼 나오는 일부 문제일 뿐이다. 생활 자체를 바로 잡아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계속해서 질병이 발생한 뒤 의료 시스템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정부가 쪽방촌 주민들의 자활을 고려한 여러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했다.

김 씨는 “정부에서 보낸 보건 인력이 쪽방촌을 둘러 볼 때도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보고 갈 때가 많다. 주민들과 직접 부딪쳐 가면서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파악하고 대책을 수립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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